땡스기빙 끝, 파이널 시작

그토록 기다려왔던 땡스기빙 브레이크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세번째로 맞이하는 파이널 기간이 시작됐다. 각종 과제물들의 데드 라인을 점검하고 일정을 짜다 보니 한숨만 나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왜 그때 놀았을까’,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등등의 후회를 하게 되지만, 매번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것도 같다. 작년 이맘때 땡스기빙 연휴동안 펑펑 놀아서 파이널때 정말 ‘울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세미나 수업은 정말 준비할 게 너무 너무 많다. 파이널을 위해 다시 정독해야 하는 페이퍼만 서른개. 텀페이퍼 하나와 레프리 리포트 두개도 내야 한다. 그러면서 내가 맡은 TA 과목의 파이널도 따로 준비해야 하니, 아마 분명히 일주일 뒤에는 눈물 콧물 흘리면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을 거다.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면서 쓰지만, 막상 그때가 닥치면 진짜 머리털 다 뽑아 가면서 괴로워 하겠지..

 

오늘 밥먹고 소화를 시키는 ‘사치’ 를 누리고자 서점에 잠시 들렸는데, 반스 엔 노블에서도 이북 리더기를 별도로 개발해서 판매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nook’ 이라고 불리우는 제품인데, 킨들과 소니 리더의 장단점을 적절히 합쳐 놓은 느낌이었다. 나는 오늘부로 거의 킨들로 마음을 굳히고 월급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함부로 돈쓰지 말고 조금 더 고민을 해야 한다는 신의 계시인지 :) 6인치 정도의 이북 리더에 3G 나 wi fi 를 이용한 간단한 인터넷 서핑이 추가되고 PDF 와 word 파일을 자유 자재로 불러내 읽을 수 있는 제품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플러스 도서관에서 이북 ‘대여’ 가 가능하고 구글 이북과 아마존 이북을 동시에 다운받을 수 있다면 정말 금상첨화일텐데. 눅도 그렇고 소니 리더도 그렇고 아직 정식 출시가 되지 않은, 프리 오더만 받고 있는 상태다. 킨들도 두번째 버젼이 최근 발매가 되었으니 거의 모든 제품들이 내년초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경쟁을 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내년 상반기까지 시장의 추이를 지켜본 후 구매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조바심과 ‘욕심’ 만 잘 제어한다면 :)

 

 

(American) football

난 미국에 연고가 없으므로, 사실 연고 중심 스포츠가 메이저인 미국 스포츠에 크게 열광할 이유가 없으나, 어찌 어찌 하다보니 여기서 친해지게 된 친구들의 연고팀들을 응원하게 됐다. 대학에 있어서 그런지 프로 스포츠보다는 컬리지 스포츠가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가고 재미도 더한데, 그중에서도 칼리지 풋볼(정확히 말하면 ‘미식축구’라고 해야 하겠지만 편의상 짧게 풋볼이라고 칭함) 은 한국에 있었다면 정말 결코 좋아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종목이다. 한국으로 치면 연고전보다 조금 더 뜨거운 열기가 매 주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데, 내가 지금 있는 대학처럼 규모가 큰 주립대학의 경우 매주 풋볼 경기를 위해 일주일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콜로라도는 초심자인 내가 봐도 정말 정말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홈경기때는 도시 자체가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그럴때마다 미국인들은 참 인내심도 강하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애착도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느낀다.

어쨌든, 추수감사절 주간은 칼리지 풋볼 시즌중 가장 뜨거운, 각 지역의 거의 모든 라이벌리 게임이 펼쳐진다. USC 는 UCLA 와 붙고, UNC 는 NCSU 와 붙는다. OU 는 OSU 와, UF 는 FSU 와, ND 은 Stan 과 대결한다. 이런 전국적인 라이벌리말고도 풋볼에 미치는 남서부 지역에서는 그 대학 동문들만의 열정적인 라이벌리가 있기 마련인데, 내 친구 Scott 의 모교인 South Carolina 와 Clemson 간의 라이벌리가 그렇고, 또다른 친구인 Chris 의 가족들의 모교인 Texas A&M 과 Texas 간의 라이벌리가 그렇다. 내가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라이벌리들이다. 나는 USC 와 UCLA 풋볼 경기할 때 LA 가 마비된다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각 지역마다 그런 마비사태가 벌어지는지는 몰랐다.

결론은 미괄식이다. TAMU 는 졌고, SC 는 이겼다. 크리스는 풀이 죽어서 고향에서 돌아왔고, 스캇은 아직 연락은 없지만 어쨌든 월요일에 만나면 뿌듯한 얼굴로 어떻게 이겼는지 이야기할 것이 분명하다. Colorado 는, 당연히, 아주 당연하게도 Nebraska 에 패했다. 올해도  Big12 꼴찌는 확정적일듯. 문제는 내가 이 경기들을 다 봤다는 거 -_- 바빠 죽겠는 이 시점에 말이다..

 

참고로 난 컬리지 바스켓볼을 올해부터 제대로 파 보기로 결심했다. 지금 좋아하는 팀들은 조지타운, 듀크, 내 모교인 콜로라도, 버클리 정도다. 캔터키과 캔사스는 예의 주시해야 할 팀들이고, 미시건 스테잇과 빌라노바도 보는 재미가 쏠쏠한 팀들이다. 난 콜로라도가 전년도에 비해 월등히 발전할 것이라는 데에 베팅을 하겠다.

지인

오늘 공부하면서 한 “딴생각” 은 (난 공부중 하는 딴생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내가 지원한 일곱 학교들 주변에 내 지인들이 있을까 없을까, 였다. 신기하게도 샌프란시스코 주변을 제외하면 전부 일면식이 있거나, 그곳에 가면 내가 기꺼이 만나볼 사람들이 최소한 한명은 있더라. LA 에는 오래된 중/고등학교 동창이자 농구/스타/당구 메이트였던 친구가 한명 있고, 인디애나에는 고등학교 동창 여자 친구가 한명 있다. 친구라고 하기엔 좀 먼 사이인데, 내 첫번째 여자친구의 베스트 프랜드여서 직접적으로 보다는 그 엑스 걸프랜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사이다. 지금은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같은 코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또.. 세인트루이스엔 크리스의 소개로 알게 된 이쁜 백인 여성분이 한분 계시고, 시애틀엔 학부때 내 조교였던 대학원 선배가 공부하고 있다. 정작 난 대학원에 다니지 않았는데 어찌 어찌 대학원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다. 대학원 과목을 땡겨 들은 게 컸고, 나와 유학을 준비하던 경제학과 사람들중 나를 제외하고 모두 동대학원에 진학해 자주 사무실을 들락날락거린 탓도 컸다. 또.. 보스턴엔 역시 고등학교 동창 여자 친구가 한명 있다. 보스턴에 학교가 많아서 그런지 주변에 보스턴에 잠시라도 머물렀던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같이 보스턴 좋다는 말들 뿐. (집값이 비싸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나는 보스턴 비호감) 또.. 워싱턴엔 adella 님이 계신다; :-) 지금은 남부 버지니아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암튼 가면 꼭 찾아 뵙고 싶은 분. 아, 리치몬드에 폴이라는 친구도 있다. 스캇의 소개로 알게 된 스캇의 단짝 친구인데 함께 윌코 콘서트를 봤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타입의 백인이다.

 

어찌 어찌 생각하다 보니 미국의 곳곳에 내 지인들이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에서부터 이어져 온 관계도 있고, 미국에 와서 새롭게 생긴 관계에서 파생된 관계들도 있다. 아직 한국에서 내가 맺었던 관계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초라하지만, 어쨌든 여기서도 새롭게 관계라는 것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단 1년 살았을 뿐인데 참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다. 아마 지금 있는 프로그램의 동기들이나 친한 선,후배들도 몇년 후에는 미국의 각지로 흩어 질테고, 지금 오하이오에 있는 앤디처럼 먼 곳에서 왕래하며 지내게 될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조금은 더 미국을 여행하고 싶은 기분이 생길까. 상대방에게 신세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라도, 어디에 가면 누가 있고, 어디에 가면 다른 누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건 여행자에게 한결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그 사람을 그곳에 가서 만나고 안만나고의 문제와는 또 다른 마음 편한 안도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곳에 가면 종혁이가 있으니 거긴 꼭 들려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다. 모두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내가 편하고 푸근한 상대는 아니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날카롭고 신경질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내가 마음을 연 누군가에게는 꼭, 마음 편하게 내가 사는 곳에 와서 내게 전화 한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배우자, 配偶者, spouse

흔히 말하는 부부의 상대편을 일컫는 말. 한자로는 짝배자에 짝우자, 놈자자를 쓴다. 영어로는 단순히 직역으로 spouse.. 누군가는 배우자를 찾는 과정을 굉장히 복잡다단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고 간단한 과정으로 인식한다. 나는 전자에 조금 더 가까운데, 나에게 맞는 상대를 찾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나와 잘맞는 부분을 찾기 보다는 잘 안맞는 부분을 찾아내어 ‘그래서 넌 나와 안돼.’ 라고 정리하는 편이다. 상대방을 좋아하게 되면 쉽게 상대방을 이상화시키게 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추후에 크게 될 일의 씨앗을 발견하고도 스스로 묵살시켜 버리는 경향을 종종 보여 왔던 경험에 기반한 일종의 학습효과같은 거다.

 

나와 같은 오피스를 쓰는 스티븐이라는 일리노이 출신의 1년차 과정 청년(..) 은 이미 자신의 피앙새와 함께 살고 있다. 일리노이에서 대학까지 마친 그는 덴버 로컬인 피앙새를 만나 덴버에서 직장을 구했고, 2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피앙새가 대학원에 진학하자 공부하느라 바쁜 그녀와 더이상 놀 수 없음을 깨닫고 경제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털보 청년이다. 굉장히 진중하고, 절대 쉽게 웃지 않으며 매사에 너무 진지해서 상대방을 답답하기까지 만드는 그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피앙새를 만나 덴버에 정착했는데, 재밌는 건 피앙새가 유태인이라 유태인의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는 거다. 무슬림과 마찬가지로 유태인의 명절 혹은 풍습도 가톨릭 중심으로 형성된 현대의 캘린더와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끔 그가 유태인 피앙새와 그쪽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분주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상당히 흥미롭게 옆에서 구경하곤 했다.

 

또다른 케이스로, 나와 동기인 유팡이라는 중국인 여자 학생(..) 이 있다. 중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베인 엔 컴퍼니에 들어가서 덴버 지부에서 일을 한 경력이 있는 그녀는, 회사에서 만난 피앙새와 올해 결혼식을 올렸다. 피앙새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인데 중국어는 전혀 하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의 재벌이라고 하는데, 이건 전해 들어서 확실치 않다. 아무튼 그녀는 미국 나이로 24, 한국인의 정서로는 상당히 어린 나이인데 결혼을 결심했다. 경제학과 대학원 유학생답지 않게(!!) 명품을 좋아하고 화장과 꾸미는 것을 사랑하며 한국 드라마 보는 것이 취미인 (송혜교가 너무 좋은..), 또래 여자들의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도 한데, 최근에는 남편이 미니쿠퍼를 선물로 사줬다고 내게 자랑했다. 그녀 역시 스티븐과 마찬가지로 덴버에 신접 살림을 차리고 학교로 통학하며 지낸다.

 

나는 결혼이 아직도 인생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내 인생의 후반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혼의 결정 과정이 너무 지나치게 신중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사리 분별을 하고 논리적 판단을 할 때와 같은 수준의 기준과 사고 능력만 있으면 능히 잘 치룰 수 있는 게 결혼이 아닌가 싶다. 결혼을 나와 하게 될 미래의 배우자를 찾는 과정이 너무 strict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싶어서 하는 말이다. ‘눈이 높고 낮음’ 과는 약간 다른 성격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눈’ 이 매우 높다고 (!) 생각하지만, 경험적으로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눈높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함께 산다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매일 잠자리에서 같이 일어나고, 나의 가장 편한 곳을 공유해야 하며, 나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려 줘야 하는 사람을 무턱대고 마구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택’ 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절한 단어가 안떠오른다) 하지만 그런 현실의 과정들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을 미리 발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그보다는, 믿음이 가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쉽고 간단하지 않을까 싶다.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얼굴이 약간 못생겨도, 성격이 약간 모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버릇을 가지고 있어도 사는데 큰 불편을 없지 않을까.. 평생 사랑하며 사는데 큰 장애물은 안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어야 할 것이고.

 

과거에 얽메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성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하루였다.

 

simple and insightful

말과 글을 조금 더 간결하게 쓰고 싶다. 그러면서 그 안에 낭비되는 단어들이 없게끔 하고 싶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단어만을 사용하고 싶다. 그리고 그 단어들이,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과 글이 허투루 비추어 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청자와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끔, 하지만 그 안에서 의식의 발전을 촉진하게끔 했으면 좋겠다.

다음 전화기.

지금 전화기를 쓴지 2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새로 산다는 건 아직 무리이긴 하지만, 요새 강렬히 땡기는 전화기가 하나 있다. 바로 모토로라 Droid 인데, 요즘 미국에선 아이폰만큼이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지금 쓰는 전화기 업그레이드 시점이 오면 당연히 아이폰으로 바꿔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예 통신사 갈아 타면서 드로이드로 바꾸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스펙은,

http://www.motorola.com/Consumers/US-EN/Consumer-Product-and-Services/Mobile-Phones/ci.Motorola-DROID-US-EN.alt

대충 이렇고..

내가 끌리는 건 우선 안드로이드 기반이라는 것. 딱히 안드로이드가 애플 시스템보다 더 좋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이 안드로이드 기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몇몇 블로거분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괜히 이쪽 관련 제품을 써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외에도 구글에 굉장히 특화되어 있다는 점도 좋다. 나처럼 구글없이는 하루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에겐 참 유용하겠다 싶더라. 특히 구글 토크가 지원된다는 점, 구글맵이랑 (내 최고의 장난감ㅋ) 구글 서치, 유튜브(버스타고가면서 무한도전 스트리밍 보는게 더이상 꿈만은 아니다!) 까지 기본으로 지원되는 점도 좋아 보이고.. 어플리케이션이나 음악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용량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듯 하다.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전화기에서 간단한 어플을 통해 웹에 글을 쓰고, 편지를 확인하고 간단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이 제품이 아마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 듯 하다. 내가 원채 모토로라 메니아인 탓도 크겠고.. 지금까지 쓴 거의 모든 셀폰이 모토로라였다. 지금도 그렇고.. ;

결국 엠피3 플레이어를 아이팟 클래식으로 마련했기 때문에 아이폰은 왠지 중복투자같은 느낌이 있다. 그래서 더 아이폰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구글 토크는 내 최근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 유학오면서부터, 혹은 유학오기 직전부터 구글토크는 내게 무척이나 특별한 매체였다. 지금도 ‘가능하다면’ 구글 토크를 켜놓고 있는다. 최근엔 하도 바빠서 그걸 키고 있을 시간도 없었지만, 나에게 구글 토크를 열고 초록색 불이 들어 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정도만으로도 애틋한 감정을 주는 건 없을 것 같다.

다 핑계지 뭐! 새 기계 하나 사고 싶어서 떼 쓰는 중인 거다.

걷기

어제밤에, 참 오랜만에 꿈속에서 그 친구가 나왔다. 몇개월만의 등장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잠에서 깨면 꿈을 기억하기 위해 복기를 한번 하는 게 버릇이 되었는데 최근 몇달간은 그 정도로 기억에 남는 꿈을 꾼 적이 없다. 아무튼 그 친구는 간만에 퇴근을 일찍해서 집에서 잠시 쉬다가 나오는 거라며 편한 후드티 차림으로 나왔다. 한때 나의 가장 큰 이슈가 그 친구의 퇴근일 때가 있었는데, 역시 아버지 말씀마따나 꿈은 무의식적인 욕망의 발현이라고 봐도 무방할런지.. 아무튼 함께 길을 걸었다. 함께 길을 걷는다는 건, 내게 약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많은 꿈속에서 내가 가장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에는 항상 ‘함께 걷는’ 장면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 그친구와 정답고 사이좋게 걷는 일은 몇번 없었다. 최근 몇년간은 아예 없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우리는 만날 기회라던가 사이 좋게 이야기할 기회 자체가 드물었는데, 꿈속에서나마 밝게 웃으며 내 옆에서 걷는 걔를 보니까 일어나서도 기분이 좋았다.

 

아침 아홉시. 오늘부터 다시 공부 시작. 지난 사흘동안 잘 쉬었다. 학기 끝날때까지 또 꾹 참고 지내야지.

 

그리고 아마 당분간 그런 꿈은 또 못꾸지 안을까.

2년전 이맘때.

2년전 이맘때에 나는 한국에 있었다. 학부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었고, 대학원 준비도 병행하느라 육체적으로 매우 벅찬 시기를 보냈다. 22학점을 들었고, 그중 대부분은 수학과 고급 경제학 과목들이었으며, 장애우 친구를 돕는 일도 했고, 일주일에 한번씩 맑음터로 봉사활동을 갔다. 그러면서 학교 서치를 하고, 원서를 쓰고, 추천서를 서면으로 받아 성적표와 함께 발송하는 일도 했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양식이 전부 다르기에 학교마다 꼼꼼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워낙 여유가 없고 마음이 급하다 보니 결국 엉망진창으로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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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육체적인 피곤함보다 훨씬 더 나를 괴롭혔던 건 정신적인 불안함과 스트레스였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면 내일 닥칠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이 오는 것이 두려웠고, 단 한순간도 마음편하게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상당히 루틴한 일상을 무거운 마음으로 하나하나 ‘제껴 나가야’ 했는데 유일하게 그런 현실을 잊을 수 있을 때는 학교 도서관 근처에서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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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는데, 한글로 된 문자를 더이상 보내고 받지 못한다는 것에 엄청난 좌절감을 느낄 때이다. 몇십원정도 하는 그 문자 한통에 하루종일 쌓였던 스트레스와 불안감과 긴장감이 한순간 녹아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는 듯한 말 한마디에는 참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고, 그 안에서 충분한 감정의 교환을 이룰 수 있다. 내년 4월 2년 약정이 끝나서 아이폰을 싼 가격에 사게 될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릴 뿐. 아이폰은 한글로 문자를 주고 받는게 된다더라.

무지와 비판

가끔, 아주 가끔, 그러니까 살면서 한 세번쯤 검색창에 아버지의 이름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몇년에 한번씩 하게 되는 이 ‘놀이’ 는 은근히 강한 자극으로 돌아오는데, 왜냐하면 검색되어 나오는 글들의 90%가 아버지의 저작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문제가 됐던 <요동사> 의 경우엔 중국 사학계의 동북공정 논란과 맞물려 전문가가 아닌 아마츄어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꽤나 회자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츄어 역사가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자신의 성향과 입장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논리를 전개시키기 때문에 상당히 일방적으로 몰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천하국가> 가 발간된 지도 꽤 지났는데, 아직 그 책을 제대로 읽어본 아마츄어 역사가는 없는 듯 하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검색했지만 그 책을 통독한 후 감상평 혹은 비판글을 올린 블로그나 사이트를 찾지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대부분의 블로그 포스트들은 <요동사> 의 출판 시점과 맞물려 있는데, 그 와중에도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드물게 발견했으며, 그중에서도 <한중관계사> 부터 시작하는 연작들을 모두 읽은 듯한 사람이 쓴 글은 전혀 찾아 보지 못했다. 역사쪽 ‘지식’측면으로는 아마츄어라고도 할 수 없는 나도 조금만 집중하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책들이다. 한자가 난무하고 고서들의 인용이 잦다고는 해도 생각보다 친절한 해설과 해석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전혀 모르는 나도 중심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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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비난들은 동북공정과 관련되어 있다. 고구려를 한국의 역사에서 분리시켜 놓으려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이 역사공동체 개념과 요동사의 겉무늬인데, 고구려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국의 사학자들은 기를 쓰고 이 이론을 신라 중심의 역사학과 엮어 치부하려 한다. 신라를 좋아하시는 교수님과 같은 학교에 속해 있다는 원죄도 있고.. 이러한 비난에 대한 전문적이고 이론에 기반한 반론은 <한국사 시민 강좌> 42권에 나와 있으므로 내가 말할 처지가 되지 못하고, 비 전문가로서 내가 볼때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이런 (아마츄어들에 의한) 비난과 비판이 상당히 뿌리깊은 민족주의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들의 목소리의 뿌리를 파고 들어 가면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건 보수층보다 진보층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소위 좌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 의해 성숙해 왔다. 이건 현재 한국의 보수층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과거 친일과 친미의 잔재들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데, 이유야 어쨌듯 가장 국수적인 정체성을 보여야 할 민족주의가 급진적인 사회주의와 결합하는 형태는 분명 흥미롭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게 한국의 독특한 국민성과 결합될 때, 상당히 감정적인 형태로 역사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위험성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발끈하는 거다. 아마츄어라고 모두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자신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국사와 관련된 담론에서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할 때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하나의 학문적 역할에 그치는 경우이지, 한 사람의 가치관을 지배해서 입장을 생산해 내는 단계에까지 나아가는 경우는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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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모두에게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성을 부여했지만, 전문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격리를 시키는 구조를 형성했다. 그나마 구글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면서 구글 학술 검색창에서 왠만한 검색을 실행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고급 지식들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인터넷상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결국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는 정보들을 광범위하게 퍼뜨리는 역할에는 인터넷이 큰 몫을 했지만, 비용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획득할 수 있는 고급 지식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접근성을 부여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지식의 발달이 하나의 권력을 만들어 내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나 역시 이 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릴 때는 학교 서버를 이용해서 각종 저널의 최신 페이퍼들을 마음껏 다운받고 프린트할 수 있을 때이다. 저널마다 이슈당 많게는 몇백달러에서 적게는 몇십달러까지 돈을 내야 그 페이퍼들을 읽을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정보들을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고급 지식이 싹틀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커지게 되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과연 현대의 아카데미아가 과연 이런 보통 사람들에게서 발생한 놀라운 지식들을 아무런 편견없이 흡수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면 또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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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무지를 제거해 나가는 게 사회적 목표라면, 현재의 인터넷은 그리 생산적이거나 효율적이지 않다. 인터넷상에서 왕왕 일어나는 토론과 담론들이 충분히 생산적이기 위해서는 기본의 권위 체계와 아카데미아가 가지고 있는 특권을 어느정도 ‘훔쳐와야’ 한다.  요즘 시대에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이런 식으로도 벌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프로메테우스의 상자’ 를 과연 대중들의 힘으로 ‘밑으로’ 가지고 내려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인터넷의 보급 과정은,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경우 ‘순의 외부효과’ 가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음을 어느정도는 증명했다고 본다. 문제는 이제 ‘교육의 질’ 이다.

Pixies in Denver

– 나 역시 픽시스를 ‘역사’ 로 ‘배웠고’, 학습했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미 그들이 해체한 후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아마 너바나가 아니었다면 이들의 존재를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앨범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86년에 결성해서 93년에 공식적으로 해체한 이 전설적인 보스턴 출신 밴드는, 정작 본인들의 나라에서는 한번도 메인스트림에서의 성공을 거둬본 적이 없다. 대신 영국과 유럽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본인들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 그런지씬의 엄청난 성공이 시작되기 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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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에 이미 한번 재결성을 했고, 투어를 했다. 그리고 올해 다시 시작한 투어는 그들의 기념비적인 앨범 Doolittle 의 발매 20주년 기념 투어라고 한다. 늙은, 이미 죽어버린 밴드의 재결성을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용돈이 떨어졌구나’ , ‘핑계가 진부하다’ 등의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살아 생전 픽시스의 콘서트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같은 어린 세대에겐 이건 대단한 행운이고, 믿을 수 없는 기쁨이며, 죽기 전까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자랑스러운 추억이 될 사건이다. 큐어가 메인스트림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가 되고,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투어가 매진이 계속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이미 더이상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유산을 동시대에서 즐길 수 있다는 기쁨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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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은 Fillmore auditorium 이었는데, 덴버 깊숙한 도심 슬럼가에 있었다. 간판도 누추하고 공연장 주변도 환경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좀 그랬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굉장히 재밌는 공간이었다. 1900년대 초중반에는 아이스 스케이트장으로 쓰였고, 그 이후 롤러 스케이트장으로 개조되었다가 잠시 폐쇄, 그러다가 90년대 후반 공연장으로 리모델링되었다. 그래서 아직 샹들리에도 달려있고, 오래된 나무 바닥이 친근하기까지 했다. 상당히 큰 롤러 스케이드장이었던 듯 한데, 공식적인 입장 가능 관객수는 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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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프닝 밴드는 No age 였다. 2인조 펑크 밴드. 이들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이름값을 가지고 있고 단독 공연을 해도 능히 성공적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밴드인데, 이날 메인 밴드가 워낙 거물인지라 기꺼이 초반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에 충실했다. 드럼과 기타만으로 이루어진 단촐한 구성인데 사운드가 비어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와 미디를 적극 활용해 빈공간을 메꾸고, 짧은 곡구성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고, 드럼이 사운드를 주도해 단순히 리듬 역할에 끝나지 않고 사운드를 창출해 내는 모습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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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밴드가 나오기 전까지 상당한 딜레이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장비에 문제가 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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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은 Doolittle 앨범의 motivation 을 제공한 Un chien andalou 을 상영하며 시작됐다. 실제로 본건 처음이었는데, 상당히 초현실적이었다. 블랙 프랜시스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사는 난해하고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그의 유니크한 정체성은 이후 세대의 인디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커트 코베인 딸래미 이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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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은 Doolittle 앨범의 곡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며 진행됐다. 전날 집앞 빙판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쳐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벽에 기댈 수 있는 구석진 자리에서 보느라 좋은 뷰는 아니었다. 그래서 킴 딜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공연 끝나고 인사할 때 보니 완전… ㅠㅠ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우셨다. 그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나는 픽시스의 기괴한 음악이 묘한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펙터중 하나로 킴 딜의 보컬을 꼽고 싶다. 블랙 프랜시스의 에고가 픽시스의 음악을 지배해서 극으로 치닫을 순간마다 등장하는 청량하게 아름다운 킴 딜의 백그라운드 보컬은 이들의 음악에 매력을 배가시킨다. 여전히 그 목소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음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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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뒷편으로 커다란 스크린에서 계속해서 새로 만든 듯한 뮤직비디오가 밴드의 연주와 함께 나왔다. 픽시스의 ‘문화’ 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비디오아트는 빠질 수 없는데, 거의 대부분의 뮤직비디오들은 새로 편집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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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모습은 영락없는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 프랜시스는 노래를 세곡이상 연속으로 할 수 없을 만큼 쉬이 지쳤고, 목소리도 갈라지기 일쑤였다. 아무런 쇼맨쉽도 없었고 (원래 없었지만..) 가끔 연주가 틀리기도 했지만, 픽시스 특유의 기타톤은 여전했고, 그들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었던 픽시스만의 느낌도 여전했다. 공식적인 쇼가 끝나고 한참을 관객들에게 답례하며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전혀 ‘쿨’ 하지 않게, 관객들에게 일일이 아이컨택팅하며 인사하고 고개를 몇번이고 숙여가며 5분넘게 답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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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콜에는 역시 예상했던 “Where is my mind” 가 나왔다. ㅎㅎ.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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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대단한 공연” 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평생 간직해야 할 공연이었다. “나 픽시스 공연 봤어.” 라고 자랑하고 싶기도 하다.정말 인상적이었던 건, 그리고 미국에서 보는 매 공연마다 참 인상적인 건데, 픽시스 멤버들과 거의 동세대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미친듯이 열광하며 즐긴다는 거다. 어찌보면 이게 더 맞고 당연하다. 만약 플릿 폭시스가 20년 후 재결성해서 투어를 돈다면, 50이 거의 다 되었을 나도 소리를 질러가며 환호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문화가 참 부럽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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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서 기록을 남기지 못했는데, 유튜브에도 아직 안올라 온 것 같다.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유럽에서 했던 투어 영상 몇개 올려 본다. 분위기는 거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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