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폐지 문제.

외고를 나온 사람으로서 타국에 멀리 떨어져서 외고가 없어지네 마네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참 안타깝긴 하다.

fact 는 최근 몇년간 고시 합격자 수 최상위권을 외고 출신자들이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고, 고시 합격자수로 대표되는 ‘구성원의 우수성’ 문제가 외고의 모토이자 설립 근거인 ‘국제적인 인재 양성’ 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외고는 그냥 또다른 형태의 명문고다. 외국어 교육을 많이 시키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외고생 대부분의 ‘목표’ 는 국제적인 인재가 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거다. 좋은 대학에 가면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그러다보면 뭐 국제적으로 인재가 될 수도 있겠지, 대충 이런 생각을 가진 애들이 80%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졸업후 인맥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외고의 폐지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외고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먼저 해야 함이 옳지 않나 싶다. 졸업한지 8,9년이 다 되어 가는 내가 다닐 때 조차 외고는 이미 설립할 당시의 의미를 대부분 잃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아는 서울의 여섯 외고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 환경, 교육 인프라는 무시 못할 정도로 꽤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엘리트 교육 주의자는 아니지만, 그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입학했을 때 생기는 ‘비효율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엄청나게 축적된 교육 경험을 쌓은 외고 교사들이 느끼게 될 박탈감과 ‘태업’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외고 교사라면, 질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받으면 가르칠 맛이 안날 것 같다. 그리고 외고 교사들의 능력이 학생들의 대입 성적, 더 나아가 ‘고시 합격자수’ 와 같은 사회적 성공 지표를 달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하고.

외고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경기/경복/서울 같은 명문고를 부활시키는 게 더 솔직하다. 엘리트 체육, 엘리트 미술등등 엘리트 지상 주의가 만연한 나라에서 왜 이런 교육 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는지 의아하다.

하나 더, 정두언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바대로, 외고 입시가 사교육의 원흉이라면, 왜 사람들이 외고에 그리 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답변해야 한다.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대학 입시다. 내 생각에는, 대학쪽에서 외고쪽보다 훨씬 강한 로비가 들어간 것 같다. 교육부장관에게든지, 정두언에게든지. 로비능력에서 딸리니까 이런 문제가 나오는 것 같다.

교육 문제는 참 복잡하고 힘든 사안이다. 그래서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리된 방정식같은 게 도출될 수 없다. 굉장히 철학적인 부분까지 건드려야 하는 문제이고, 그래서 사회 전체적인 논의와 컨센서스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이런 부분들이고. 때문에 나는 교육 문제가 단기간내에, 그러니까 10년 혹은 20년내에 해결될 거라고 보지 않는다. 이건 국민의 전체적인 수준이 상승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4 thoughts on “외고 폐지 문제.

  1. 네, 맞아요. “외고 입시에 문제가 있음 > 외고를 폐지”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수는 있어도 절대 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Jongheuk님 말씀대로 ‘외고 나오면 다 어떻게 잘(돈? 성공?) 되더라’ 때문이라고 해도, 정작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주인공)의 가치관과 철학 문제는 다뤄지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 그쵸.. 저도 저맘때 들었던 생각은, ‘외고가면 왕따안당하고 삥안뜯기고 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겠지.’ 였어요. 결국 인생 좀 더 살았다는 어른들이 책임져줘야 하는 부분인데, 이게 힘의 논리만으로 돌아가니 많이 안타깝죠..

  2. 전에 은사님께서 이 나라 교육제도가 바뀌려면 100년이 걸릴 거라고, 너희 다음 다음 세대에 가면 좀 바뀔 지도 모르겠다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정도까진 아니라 할지라도 단기간내에 해결되긴 불가능하겠죠. 아침에 라디오 듣다가 이 글도 생각나서 다시 댓글 달러 온^^; 덤으로, 저는 외고 입시 실패자라는…크하핫.

    • 교육만큼 그 나라의 철학이 깊게 관여할 수 있는 정책 분야가 또 있을까요. ‘어른’들이 미성년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보호 정책이 바로 교육 시스템인데, 지금 하는 꼴을 보면 참 답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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