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sh, directed by Paul Haggis

– 깜짝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 영화를 어제서야 봤다. 보고 나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좋은 영화다. 상당히 좋은 영화다. “세상에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가 있다.” 라고 주장할 만큼 우두하진 않지만 이 영화는 충분히 “좋다” 라는 기준점을 통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나는 미국에 사는 모든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그리고 불법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 학생들 모두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미국에 있지 않아서 어느정도 이슈가 됐고 또 어떤 담론들이 행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게을러서 찾아 볼 가능성도 적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예술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만큼 멍청하고 폭력적인 행위도 없지만, 이 영화는 예술이라는 카테고리에 머물지 않고 ‘교육’ 이라는 다른 장르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러브 액츄얼리 류의 옵니버스 구성이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얽히고 섥히지만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건 드물다. 바벨 과 다른 점이다. 바벨크래쉬 모두 인종과 문화간 충돌과 화해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바벨이 스케일을 크게 가져간다면 크래쉬는 보다 마이크로한 심리적 충돌에 집중하는 느낌이 강하다.  인종 집합소라는 LA 에서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흑인표를 얻기 위해 사건을 왜곡하는 검사 부부와 그 검사 부부의 차를 탈취한 흑인 젊은이 두명, 그 중 한명의 형이자 형사인 남자와 그의 멕시칸 연인이 사건의 한 축을 이룬다. 다른 한 쪽에는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는 쪽을 택하는 드라마 감독과 반대 입장을 지닌 그의 부인, 그 부인을 추행하는 인종차별 주의자 경찰, 그와 동석하는 것을 거부하는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경찰이 있다. 이 두 집단을 불의의 사고를 통해 결말쯤에 이르러 만나게 된다. 사실 스토리는 뻔하다. LA에서 일어나는 각종 인종 차별, 혹은 인종간의 다툼을 보여주는 게 다다. 백인이 majority 고 주류/비주류간의 권력 다툼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소수 인종간의 다툼, 혹은 몰이해가 더 심각하고 해결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한다. 중요한 건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거다. 흑인들을 고용했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지병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둔 인종차별 주의자 경찰은 결국 자신이 추행한 흑인 여성의 목숨을 구해주는 과정에서 그의 삶에 또한번의 터닝 포인트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다. 그 흑인 여성의 남편이 폭주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은 정의로운 젊은 경찰은 서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오히려 자신의 내부에 흑인에 대한 몰이해와 경멸이 있음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나쁜 것은 조금 괜찮아 지고, 좋았던 것은 약간 더 나빠진다. 이게 사실 제대로 된 결론이다. 우리 삶에 기-승-전-결 로 딱 이해되고 해결되는 건 몇 없다. 시작은 기억도 나지 않고, 끝은 저 멀리 있어 보인다. 영화는 인종 문제라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을 관조하려 한다.

– 이런 깊은 성찰이 가능한 이유는 감독이 바로 폴 헤기스이기 때문이 아닐까. 맞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의 시나리오를 쓴. 그래서 그런지 화면을 통해 느껴지는 ‘온도’ 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나는 흑인과 히스페닉을 발견하기 힘든 곳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참 리얼리스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말 주택가에 차를 세우고 있으면 총을 들고 내리라고 하나?’ 라는 걱정도 들었다. 영화를 보고 바로 밖으로 나가 스캇과 술을 마시며 이것 저것 물어 봤는데, 그는 인종간의 다툼보다는 ‘벽’ 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고 답했다. 백인은 백인 친구를 사귀고, 흑인은 흑인 친구를 사귄다. 때문에 흑인과 백인이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캇은 힙합도 좋아하고, 흑인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은 편이지만, 생각해 보니 그의 주변에 흑인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에는 60% 의 백인과 30% 정도의 흑인이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에게 나는 유일한 한국인 친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유색 인종이 매우 드문 이곳에서도, 세탁소의 대부분은 한국 사람이 운영한다.

– 영화 음악도 좋은 편. 너무 자주 음악을 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주도록 설정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4 thoughts on “Crash, directed by Paul Haggis

  1. 이 영화를 몇년전에 영화관에서 봤는데… 뒷자리에서 큰소리로 떠들던 사람때문에 기분나빴던 기억이 나네요. ㅋ
    영화는 저도 재밌게 봤어요. 뭔가 뭉클한… :)

    • 영화관에서 떠드는 사람은 꼭 있는 듯 해요. 일종의 세금처럼 따라 붙는 것일지도… :) 영화 참 좋았죠?

  2. 종혁아 추석이었는데 미국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네…
    가까이 있으면 자주 연락도 하고 소식 전할텐데 솔직히 요거 좀 어색하기도 하고 잘 모르겠당…ㅋ
    잘 지내지?
    나도 이제 떠나고 싶은데…
    자신은 별로 없다…^^;;
    암튼 지내는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요즘 스트레스 때문인지 젋은 사람들한테도 병이 많이 온다더라…
    나도 스트레스는 장난아니게 받는 직업이라…ㅋ
    가까운 사람이 위암으로 힘들어해서 그런지 주변사람들 걱정이 더 많이 되네…
    진경이가 추석이라고 문자보냈는데…
    지금 힘들어도 잘 참자더라 좋은 날 있겠지…라며..ㅋ
    건강해라~^^

    • 어 여긴 추석 별 의미없다 ㅋ
      여기다가 억지로 쓸 생각하지 말고 싸이월드 쪽지를 보내. 며칠에 한번은 확인하니까 그쪽이 너에게 더 편할 것 같다. 여긴 비밀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지 말고. 탈모 진행되더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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