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nationalism

우리나라의 내셔널리즘은 참 독특하다. 제국주의 시대에서 비롯된 우월성을 함유한 민족주의도 아니고, 동유럽 국가들에서 보여지는 순수 혈통과 관련된 민족주의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 민족주의의 근간은 ‘국가’ 도 아니요, ‘민족’ 도 아니라는 거다. 정말 어느분의 말마따나 ‘역사공동체’ 의 개념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박재범이라는, 나는 잘 모르는 친구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잘나가는 아이돌의 리더였고, 장래가 촉망되는 가수였다는 정도밖에는 모르겠다. 그 친구가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몇년전에 마이 스페이스에 쓴 “한국비하발언” 때문이라는데, 사실 보다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예비군 횽아들을 건드려서” 였던 것 같다.

박재범이라는 사람의 인격에 대해 난 전혀 모른다. 다만 그가 몇년 전 썼던 글들을 보면서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에 대해서 밝혀진 어떠한 fact 도 없는 시점에서, 인터넷을 통해 여론을 확산시키던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 만으로 한 사람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저놈 한국을 싫어하다니 나쁜 놈 아니냐고, 한국 사람으로서 기분 나쁘다고, 양키는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외국인 노동자 주제에, 등등등. 가만히 댓글들을 보고 있으면 소름을 돋을 정도로 책임감없는 발언들이 쏟아졌고, 그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건 ‘우리’ 가 아닌 ‘남’ – 여기서는 외국인 – 을 대하는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태도였다. 내가 만약 외국인 노동자였다면, 정말 한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돈을 벌려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구 사항들이 정말 대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 팬들이 그를 두둔하기 위해 전개한 논리도 우습기 짝이 없었다. 박재범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그의 추측된 인간성 – 여기선 한국을 대하는 태도 – 와 그들이 주도하는 왜곡된 이슈 – 여기서는 애국심 – 를 그대로 따라 갔다. 애국심이 좀 없으면 어떠냐, 너희들은 한국 싫다는 말도 안하냐, 그 잘난 애국심으로 이명박은 왜 못 쫓아 내냐, 등등. 그렇게 대응함으로써 ‘같은 수준’ 으로 떨어져 버렸다. 물론 올곧은 애정만이 전부인, 교육이 덜 된 10대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토론을 바라는 게 무리였을 수도 있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예비군 횽아들과의 말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은 애초에 제로였다.그리고 그 멍청한 ‘쉴드’ 가 결국 박재범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추방시키게 만들었다, 라고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이걸 곧이 곧대로 바로 바로 이슈화시켜버리는 옐로우 페이퍼들은 사건을 종결짓게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대체 요새는기자라는 직업이 어느 똥구멍으로 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대상의 인권과 권리에 대한 일체의 고려도 없이 그저 클릭수 높여 보겠다고 자극적인 단어들만을 조합해 하나의 기사를 만들어 낸다. 기자 스스로 영어를 해석할 의지도 없어 보이고, 대충 댓글 몇개 긁어다 붙여 놓으면 몇십만이 읽는 인기 기사로 채택된다. 인터넷에서 정부가 규제해야 할 것은 일반 네티즌들의 익명성이 아니다. 자기 이름 걸어 놓고 기사 쓰는 기자들의 두뇌 구조를 먼저 체크해야 한다.

어쨌든, 한국의 내셔널리즘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무서운 건, 개개인의 감정들이 하나로 응집되어 표출되는 과정이 상당히 신속하고 대단히 결속력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상당히 비겁하다. 사회적 순기능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쇠고기 파동의 본질은 이명박 정부의 실책에 대한 비판이 아닌, 자신이 먹는 밥상에 독극물이 올라오는 느낌을 참을 수 없었던 시민들의 단순하고도 즉각적인 분노와 공포였다. 그래서 시민단체와 운동권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이슈를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가려 했지만 실패했다. 공권력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면, 단순하고 즉각적인 분노는 이내 사그러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논리성을 기반으로 한 분노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순간적으로 욱해서 막 씨부리는 것이기 때문에 권위가 찍어 누르면 찍히게 되기 쉽다.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피해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군대라는 시간의 무의미함과 무용성이 예비군 횽아들을 보수적으로 바꾸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될 수 있고, (심지어 본인은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박재범건과 같은 특정 이슈에서 상당히 보수적으로 바뀌게 되는 걸 볼 수 있다) 좀 넓게 보자면 일제 시대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차별’ 을 깊게 경험한 세대에서 비롯됐다고도 추측할 수 있겠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차별을 당했을 경우 같은 방법으로 타인을 차별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혹은, 자신이 차별당한 이슈에 대해 왜곡된 편견을 가지게 되기 쉽다. 그래야만 잃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차별을 불이익이라는 단어로 치환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경험한 수많은 굴욕과 불이익들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도 나처럼 고생해야 해, 너도 나와 같은 위치에서 시작해야 해’ 같은 유치한 감정들을 유발시키는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이 나라의 민족주의를 비겁하다고 표현한 건, 막상 군대를 수십번 기피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 여당의 원내 대표를 하고 있는데 이 사람에 대해선 그 어떠한 여론도 형성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고 일본인들의 속성을 비꼬던 사람들이 결국 그들과 똑같아 지고 있다. 이것도 일제의 잔재인가? 아니면 근 100년동안 얻어 터지기만 했기에 본능적으로 움츠려 드는 것인가? 권위와 권력에 의해 보호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굴종적으로 따라갈 뿐이고, 자신들이 익명성을 기반으로 신나게 두들겨 팰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선 극단적인 단어들을 이용해 공격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극단적이다. 나는 결국 한국의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의 후퇴에서 비롯된 반동이라고 본다.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나라의 변화에 맞추어 등장한 일종의 변태 괴물 정도.

한국의 민족주의는 자기 만족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결코 생산적이지 못하다. 내가 당한 만큼 상대방도 끌어 내려야 한다. 내가 고생한만큼 상대방도 고생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건 그냥 내가 가져갈 뿐이다. 그걸 다른 사람과 분배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점점 강해진다. 한마디로, 피해는 공통으로 받아야 하지만, 이익은 혼자 다 챙기고 싶어 한다. 가끔 언론에서 다루어 지는 이타적인 사람들의 행위는 그저 그 사람의 고고한 인격에 기반할 뿐이지, 인터넷을 통해 유행이 된다거나 이슈화되지는 못한다. 이건 그저 비겁하고 저열한 집단주의 행동의 다른 양상일 뿐이다.

앞으로 또 어떤 희생양이 걸려 들지 모르겠다. 이 헤프닝에서 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피해자는 박재범이라는 청년 하나다. 나는 이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른다. 설령 진짜 나쁜 놈이었다고 가정해도, 한국을 정말로 혐오하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를 내쫓는 과정이 결코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 만큼은 자명하다.

추신. 아마 그는 다시 컴백할 것이다. 그가 컴백한다는 건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잘못이 바로 잡아졌다는 거니까.

6 thoughts on “sweet nationalism

  1. 그냥 어이없죠;; 힘들고 철없던 시절에 한 말로 한 사람들 매장시킬수 있는지.. 말한마디가 그 사람이 생각 전부인양 매도하고 감정적이고 흑백논리자 같아요 다들.. 이럴때만 다들 애국심이 불타는지;; 아 너무 시러요.ㅠ 10대 감성 한국인;;

    • ㅎㅎ 통통배님이나 저도 결국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조금 덜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요 :)

  2. 글 잘 읽었습니다.
    참 좋은 글이네요..
    제가 마음속에 느끼는 무언가를 글로 속시원히 써준느낌이라 감사하기까지 하네요..
    저는 한국인이되 한국인이 참 궁금합니다.
    끊이지 않는 궁금증을 떠않고 사는 한국인인것 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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