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재밌게 해야 함.

이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 맛있게 먹는 밥이 소화도 잘된다. 공부는 재밌고 즐겁게 해야 머릿속에 박혀서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어떤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흥미를 느끼는 정도는 달라지기 마련이고, 여기서 세부 전공에 대한 첫번째 호불호가 생긴다.

난 정말 거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bullshit 이라고 참 많은 사람들한테 비난받고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 지금 현재의 경제 위기를 불러온 사상들의 기본 베이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원죄를 지우기 어렵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하나는 정말 끝내주는구나 싶은 순간들이 참 많다. 어디에나 100% 순수한 인공물은 존재하지 않듯이, 거시 경제학에도 여러 노이즈들이 끼여 들어 본질을 흐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거시 경제학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경제학이 사회 과학의 한 분야로서 기능하면서 논리성과 설명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해주는 강력한 분석툴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빨리 대가들을 만나고 싶다. 만나서 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넌지시 제시해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몸이 안달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실력이 일천하니 우선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조장옥 교수님같은 분의 수업을 학부때 듣고 왔다는 게 참 행운같다. 난 그때는 정말 하나도 몰랐다. (지금도 하나도 모른다) 그나마 지금 나아진 건, 그때 그분이 하셨던 멘트들이 지금에 와서 다시 공부하면서 새롭게 이해가 된다는 거. 공부를 좀 열심히 해서 들었다면 정말 인생에 남는 명강이 되었을텐데. 그때 유학준비도 같이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원..

갑자기 고급 거기 듣고 막 나와서 형들이랑 담배피던 기억이 난다. 그립구나, 케이관 2층.

추신. 우선 몇개의 학교들만 정했다. 일단 그림은 길게 보고 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번이 안되면 안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 한번 찔러보자, 이런 마인드로다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학교들은 1년뒤 석사 학위를 받게 되면 그때 지원해 볼 생각이다. 공부에는 정말 끝이 없다고들 하는데 내가 최종적으로 안착하게 될 학교를 선택하는 문제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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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통과와 관련.

이번 미디어관련 법안의 통과 과정을 보면 크게 두세가지의 층위로 나누어 생각할 부분들이 존재한다.

첫째로 법 그자체의 의미에 대하여. 나는 법학도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번 미디어법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신문과 방송의 겸업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들의 지상파 방송으로의 진출도 사실상 허용되었다. 2013년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사전/사후 규제를 통해 최대한 일부 대기업들의 독과점 현상을 막겠다는 의도도 확인됐다. 야당측에서 극렬하게 반대했던 이유는 소위 말하는 일부 보수 거대 언론들이 MBC 를 비롯한 공영 방송사들의 지분을 사들인다던가 다른 방법들을 동원해 지상파 방송을 장악할 경우 발생하게 될 ‘예상되는 악영향”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당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이 논란을 바라보는 단 하나의 전제 조건은 간단하다. 지상파 방송이 우리의 눈과 귀를 잠식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한가? 그리고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의 생각도 그들의 의도에 의해 조정될 수 있는가?

현 정권과 그 추종세력은 포괄적인 의미의 ‘미디어’ 가 상당한 파급 효과 및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거의 분명한 사실이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연예/스포츠 관련 뉴스가 각종 포털 사이트의 ‘주요 기사’ 로 분류되는 경우가 몇십퍼센트 가까이 늘어 났고 회사의 홍보자료를 기자 이름만 달아서 내보내는 듯한 정부 정책 홍보성 기사도 눈에 띄게 늘어 났다. 이와 동시에 정부의 정책과 행위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탄압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참여 정부와 현 정권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은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미디어들을 주도적으로 통제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에 있다. 그것은 어느 정권이 어느 언론과 친하냐 불편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미디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기반한다. 이러한 나의 추측해 비추어 볼 때 이번에 통과된 미디어법 역시 현 정권이 미디어를 조금 더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MBC 가 누구의 손에 넘어가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현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현 정권이 보여준 움직임에 비추어 볼때 우리는 앞으로 전개될 방향에 대한 큰 그림정도는 그릴 수 있다. 조금 더 친 정부측의 목소리가 강해질 것이고, 신문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소위 보수 거대 언론의 목소리가 지상파를 통해서도 전달될 확률이 높다.현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평가 받는 MBC 는 그 힘을 잃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fact 는 이정도까지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섣부른 해석은 금물. 하지만 지상파 방송이 한국 사회에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토론해 볼 수있다. 나는 한자를 모르고 자라도 아무 상관이 없었던 세대에 속한다. 다른 말로 바꾸면 세로로 읽어야 했던, 한자가 한글보다 더 많이 들어가던 신문을 읽어 본 기억이 흐릿하다. 그러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신문이라는 매체에 대해 자유로운 편이다. 신문을 열성적으로 읽어본 기억도 없고, 신문의 시각을 나의 것으로 받아 들인 적도 없다. 나는 우닝 좋게도 아버지라는 가장 강력한 분석 매체를 지근 거리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신문보다 한차원 높은 분석력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신문을 우습게 보는 이유중 하나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매체의 영향력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80년대, 90년대는 신문과 지상파 방송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실을 흡수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으니까. 그리고 흔히들 많이 착가하는 것중 하나가,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언론, 혹은 미디어의 다양화가 활발히 일어났다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잠시 과도기적 시기가 있긴 했다. 도메인 자체가 몇만개 안되던 시절, 그리고 정부를 비롯한 사회를 규제할 능력을 가지고 있던 세력이 아직 인터넷에 대한 인식을 완벽하게 확립하지 못하던 그 과도기적 시절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인터넷이 소통의 주요한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갖가기 규제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결국 그 결과, 대다수의 국민들은 인터넷이라는 ‘도구’ 를 통해 기성 언론의 목소리만을 주워 담기에 이르렀다. 현 정권은 그러한 인터넷의 ‘도구화’ 를 절실히 원하는 세력이다. 인터넷을 휴대폰이나 편지처럼 완벽하게 통제하기를 바란다. 모든 주요한, 그러니까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평가받을 만한 미디어 컨텐츠는 기존의 구시대적 방식으로 생산되기를 원한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네이버에 그대로 실려 나간다. 우리는 조선일보를 구매하지 않고도 조선일보의 주요 컨텐츠들을 공짜로 소비할 수 있다. 이미 조중동을 비롯한 대다수의 기성 언론들은 인터넷선 제공 업체들과 주요 포털 사이트들에 상당한 프리 라이딩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신문사들의 방송 겸엄 허용은 ‘보여지는 것’ , 그러니까 visuality 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아마 활자보다는 영상이 프로파간다를 전파하는 데에 훨씬 효과적인 도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현 정권이 말이다.그리고 이번 법개정으로 아마 지상파 방송을 소유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어느 대기업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영상은 활자보다 훨씬 더 은밀한 방법으로 이데올로기를 세뇌시킬 수 있다. 그건 거의 공인된 사실인 것 같은데, 어쨌든 난 매스미디어 전공자가 아니니까 이론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다. 쇼 프로그램에,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 그리고 교양 프로그램까지 그러한 프로파간다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송출되어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온다. 이건 단순한 도구적인, 방법론적인 문제이다.어떻게 그렇게 만들어? 이건 그쪽 관련 전문가들이 생각할 문제이고, 우리는 그렇게 된다는 것까지만 생각하면 된다. 뭐 간단한 예로 삼성이 아직도 참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아마 (남자라면) 첼시의 유니폼을 많이 봐서였을 것이고, 혹은 (여자라면) 장동건과 기타 연예인들이 선전하는 삼성의 전자제품 광고를 봐서였을 것이다. 이건 한 기업이 PR 을 하는 방법이지만, 어떤 철학을 손쉽게 전달하는 도구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 영상이다. 그리고 지상파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크다. 이건 시청률에 붙는 광고료를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기업들의 행동을 굉장히 신뢰하는 편인데, 왜냐하면 기업이라는 동물은 극단적으로 단 하나의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돈. 그 기업들은 시청률에 목을 메고, 그 시청률은 압도적으로 지상파 방송들의 손을 들어준다.

다른 시각에서 이 사태를 바라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첫째, 소수의 지상파 방송이 모두 하나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하면 ‘비효율성이 증대된다’. 경제적으로 안좋다는 얘기다. 민주주의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다양성의 보장이었다. 둘째, 이 법안의 통과는 절차상의 하자가 있건 없건 간에 표결에 의해서 법적인 토대위에서 이루어 졌다. 국민이라는 어떤 다수의 존재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에 의해. 나는 저번 총선때부터 (대선은 좀 아닌 것 같고) 국민이라는 존재들이 보이는 어떤 행위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 왔는데, 이 행위들은 항상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 규칙성은 대부분 한국이라는 특수성,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국민성에 기반했다. 상당히 비열하고, 또한 비겁했다. 자신의 이익을 고려할 때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타인의 불행에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 버렸다. 애국심 애국심하는데 이 애국심또한 멍청한 애국심이었다. 정작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당을 지지하면서 거국적인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개 이하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코미디같지만 자신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정책을 가진 정당에 표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디 미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전에 먼저 계층적 구조 하나를 생각하자. 절대적인 신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여 그 신이 모든 한국사람들을 일렬로 세운다. 1등은 가장 소득이 많은 사람과 그 부양 가족, 꼴등은 가장 소득이 적은 사람과 그 부양 가족. 이러면 아마 ‘많이 배운 사람’ 기준으로 다시 줄을 세울 때와 거의 비슷한 등수를 부여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예외는 있겠지. 잘 못 배운 졸부, 많이 배우고도 배고프게 사는 선비등등. 이 구조는 밑으로 내려갈 수록 두터워 지는 구조다. 극빈층은 빼고. 상위 계층은 소수 혹은 극소수가 된다. 상위 계층은 자신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신사동의 변호사가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전남대 교수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 등등. 문제는 하위 계층에서 발생한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잘못된 선택을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 혹은 진보신당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대부분의 하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왜 그럴까? 이들의 교육수준이 낮아서라고 생각하는 게 일면 타당할 수 있는데, 그보다는 이들의 미디어 해석력이 상위 계층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이들이 접하는 미디어는 생각보다 굉장히 한정적이다. 그야말로 거대 언론들의 영향력이 하위 계층으로 갈 수록 절대적이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하위 계층이 케이블 티비를 보고 인터넷에 몇시간씩 투자하며 미디어 오늘이나 프레시안의 기사를 찾아볼까? 아마 ‘아니다’ 라고 대답할 확률이 훨씬 높지 않을까.

모든 건 확률 싸움이다. 절대적인 건 없다. 100%도 없다. 나는 지금 확률이 높다, 낮다라는 결론만을 각 문단마다 내고 있을 뿐, 절대적인 내 주장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러프하게 결론을 내리면 이렇다. 이번 미디어 법은 티비와 친하지 않은, 혹은 티비를 해석해 낼 수 있는 지식인층에게는 거의 무의미한 법이다. (와, 내가 ‘지식인층’ 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정말 싫어하는 말인데) 어짜피 그런다고 그네들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통제되지는 않는다. 이 법안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를 하거나 놀거나 일을 하면서 보내고, 쉬는 동안에는 싸이를 하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네이버 뉴스를 깨작거리고, 길거리 자판대에서 파는 신문의 헤드라인이 그날 자신이 아는 거의 모든 시사상식인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아주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나 아주 못배운 사람들에게나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나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에게나 모두 같은 단 한장의 참정권을 준다. 그래서 멍청한 다수를 잘 다루는 집단이 항상 승리하게끔 만드는 제도다. 아마 다음엔 박근혜가 되겠지? TK 멍청이들을 잘 다루고 있으니까. 그리고 박근혜는 어제 찬성표를 던졌다. 2013년에는 겸업이 시작된다.

통시적으로 이 사태를 봐도 결론은 거의 비슷할 것 같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항상 똑똑한 소수와 멍청한 다수의 싸움이었다. 한쪽은 지배를 했고, 다른 한쪽은 지배를 받았다. 가끔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또 계몽을 하기 위한 교류나 협력도 가끔 있었다. 결국 지배 계층 사이의 싸움이 항상 나라의 미래를 결정했고, 그러한 관습에서 해방되기 시작한 건 고작 4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는 소수 특정 계층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young 한 젊은 국가이다. 일제 시대에서 그 전까지의 전통은 한번 끊겼고, 그 이후는 일제의 잔재 세력과 끊어진 전통을 살리려는 세력 사이의 싸움이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전부터 살고 있던 그날 그날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몇백년간, 혹은 천 몇백년간 참정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전통을 몸으로 이어 내려오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참정권을 획득하지도 않았고, 참정권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시작했다. ‘타의로’ 시작했다. 여기서 그들이란 대다수의 민중, 국민, 뭐 그와 비슷하게 불리우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부여한 사람들은 극소수의 지배 계층, 그리고 그들 뒤에 버티고 있던 미국과 일본이었다. 유시민의 말이 맞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른채 민주주의를 발동시켰다. 너무나 미성숙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오히려 지배받는게 편했던 사람들,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는게 더 편했던 사람들이 뭘 알겠는가. 멍청했다는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실행시킬 만한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밑 세대에 이르러 소수의 지식인층부터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게 되는데, 그 전까지 우매한 대중에게 사기를 쳐가며 이미 권력과 부를 쟁취한 세력은 그 위치를 공고히 하기 시작할 때였다. 그리고 그들의 뿌리가 친일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의 지배 계층은 친일과 민족주의간의 싸움이었고 넓은 의미에서 반민주대 민주주의의 싸움이었다. 이게 비극인 건, 그 싸움이 전체 인구 대비 5% 도 안되는 사람들 끼리의 싸움이었다는 거. 역시 대다수의 민중들은, 어제부터 이어지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이다. 박정희가 지역주의를 탄생시키면서 민중들은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게 된다. 공구리안들의 탄생이자, ‘슨상님’ 의 탄생 시점이다. 원래 김대중은 전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였는데, 뭐 암튼.. 결국 그 세대의 후예가 나를 비롯한 멍청하다 못해 저질스럽기까지 한 20대,30대들 아닌가? 나라일엔 전혀 관심없고, 싸이질만 두시간 정도 하다가 심심하면 네이버 헤드라인 보는게 끝인 세대. 그 세대가 투표를 해서 결국 15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을 탄생시켰고, 어제 미디어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스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박탈하는 나라, 그게 한국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아무도 할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무현이 무너지고 죽어가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단지 투표를 했다는 게 나에겐 아무런 변명이 되질 못한다. 오늘 여기 저기 사이트들을 돌아 다니면서 생각보다 훨씬 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다는 글들이 많이 보인다. 일식을 봐서 좋았다는 글들도 보이고. 이 사람들은 나중에 알기나 할까, 오늘이 어떤 날이었는지. 어떻게 자신들의 미래가 결정되어 버린 날인지 생각은 해볼까. 궁금하다. 멍청한 다수의 대중들의 머릿속이.

제시카

‘냉면’ 이후에 제시카를 다시 보게 됐다. 원래 소녀시대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 이유가 ‘별로 관심가질만 한 사람이 없다’ 였다. 소녀시대라는 그룹 자체가 팬의 입장에서 “선택의 자유도” 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거였는데, 나의 취향은 그들이 제시한 선택지에 없었다. 나같은 사람까지 팬층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면 정말 소녀시대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은 천재일 듯 -_-

암튼, 나는 “냉면” 에서 제시카의 모습이 참 좋았다.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는 무한도전 가요제가 참 여러 가수들의 생명선을 연장시켜준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그 와중에 ‘재조명’ 내지는 ‘부활’ 이라는 단어까지 회자될 정도로 강한 스팟라잇을 받고 있는 엔터테이너중 한명이 제시카가 아닌 듯 싶다.

‘뭐가 그리 좋을까’ 하고 내 자신을 가만히 관찰해 봤는데 결론은 역시 ‘전 여자친구’ 였다. 객관적으로 (…일수는 없지..) 전 여자친구가 제시카보다 조금 더 이쁜 것 같다. 한국 남자들의 마른 여자 애호 현상을 십분 살핀다고 해도 결론은 같다. 요새 와서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랑 사귀었는지 알 것 같다 -_- 여튼, 제시카의 외모는 전 여친과 많이 다르지만, 이상하게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그 비슷한 느낌이 풍겨져 나오는 캐릭터가 나의 마음을 혹하게 한 것 같다.

여성성.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강한 여성성. 제시카는 그걸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만들어 진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닌, 그저 본인이 선천적으로 타고나야지만 가지고 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과 같은 거다. 그리고 수많은 남자들은 결국 이 타고난 여성성때문에 녹아 내리고, 뒤꽁무니를 쫓아 다니게 된다. 단순히 여성성, 이라고 단순화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 짧은 표현력으로는 결국 이렇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이 부류의 여자들은, 자신이 어느 순간 어디가 이뻐 보이는지 잘 알고 있다. 아니, 안다는 말로는 부족할 것 같고, 그냥 몸이 그런 매력들을 발산하는 방법을 체화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른 채 한 행동들에 남정네들은 자신들이 무엇때문에 그녀를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좋아하게 된다. 이를테면 입술을 뾰죽인다던가, 완전 엉뚱한 타이밍에 춤을 춘다던가 하는.

“이쁘기 때문에 이뻐 보이는 거 아니냐” 는 반론은 적당하지 않다. “이뻐보이기 때문에 이뻐 보이는 것이다”

diverge

너는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나는 점점 도태되어 간다.

가장 가깝게 마주 앉았던 그 때를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날이 곧 오겠지.

자꾸만 어두운 터널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도 앞으로밖에 갈 수 없는.

speed of convergence

내 삶에 있어서의 speed of convergence 는,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공부의 속도와 스타일이 얼마나 빠르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회복시켜 주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람이 스무살이 넘어가면 보통 자신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건 나이가 먹어 가면서 어떤 사람이 자신과 맞는지, 혹은 자신의 잠버릇이 어떤지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일종의 자기 관찰의 결과이다. 마음의 안정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공부는 결코 효율적일 수가 없는데, 내 경우 ‘앞으로 얼마나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가’ 가 마음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일정한 목표에 도달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신경쓰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좀 더 경쟁적인 사회는 조금 더 높은 효율을 보장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데, 나 역시 이 편견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게 되기 일쑤다. 남들과 상관없이 나에게 가장 편한 방법을 일관성있게 추구할 때 그 결과물도 optimality 에 가까워 지게 됨을 경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은 초조함과 조급함이 자꾸 일을 틀어지게 만든다. 또한, 갈수록 심해지는 게으름과 나태함도 이런 계속되는 실패에 한몫 크게 거들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원래 나는 적응이 느렸고, 무엇이든 빠른 속도로 익혀 나가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내가 속한 집단의 권위체제가 나에게 “너는 이때까지 이정도 해야 한다.” 라고 요구할 때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느끼는 초조함을 줄여 나가는 것, 그게 내가 달성해야 하는 object function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Death Cab for Cutie w/ Andrew Bird, Ra Ra Riot at Red Rocks

간단하게 쓴다. 이유는 별로 재미가 없어서였다. 잔뜩 가지고 간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퍼포먼스를 봐서 그런지 공연에 대해 글을 쓸 의욕마저 감퇴된 상태라고 보여진다.

라 라 라이엇은 좋았다. 신인 밴드이고, 데쓰 캡과 같은 대형 밴드의 오프닝을 맡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워낙 데뷔 앨범의 만듦새가 견고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했다.

앤드류 버드도 좋았다. 어떻게 “감히 그에게” 오프닝을 부탁했는지, 또 그가 어떻게 수락했는지 대해서는 정말 미스테리지만, 관객 입장에선 정말 축복받은 라인업이 아닐런지. 앤드류 버드는 천재같다. 아니, 천재다 그냥.약간 미친것도 같다.

문제는 데쓰 캡의 메인 공연이었는데, 뭐랄까, 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 집중을 공연 내내 하지 못했다. 벤 기바드는 관객과 전혀 소통하지 못했다. 그는 아주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멘트들만을 간간히 했을 뿐이고, 짜여진 플레이리스트를 성실하게 ‘재현’ 하는 것에 집중하는 듯 했다. 미국인들은 반응을 즉각적으로 나타내는 편인데,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관객들이 꽤 보였다.

왜 그랬을까. 그들의 공연이 재미없다고 느낀 게 나 뿐만이 아니라는 얘긴데, 집에 돌아오며 생각을 해봤다. 정말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고, 정말 공연을 보기만 하면 행복해 질 줄 알았다. 결과는 아니었다. 스캇은 “이 공연 전에 너무 훌륭한 공연을 연속으로 봐서 그래. 얘네도 나쁘지 않은 퍼포먼스였는데 괜히 비교되서 그런거야.” 라고 말했다. 나도 그의 의견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바인데, 그 이상의 무언가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윌코의 공연에는 있었는데 그날 공연에는 없었던 것. 홀드 스테디는 가지고 있는데 데쓰 캡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나는 어이없게도 ‘아이돌 근성’ 이라고 결론내렸다. -_-

벤 기바드는 가만 보면 “록스타” 로서의 기질이 있다. 즉, 다른 말로 바꾸면 이 바닥에서는 아이돌이라는 거다. 스타와 팬 사이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홀드 스테디가 매 공연마다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 올려 다함께 노는 난장판을 만드는 것, 윌코가 관객들에게 무려 10분동안 박수를 치게 만들고도 한시간이 넘는 앵콜무대로 욕을 먹지 않는 것. 이건 그들이 스타가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관객과 호흡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벤 기바드는 자신이 서 있는 무대를 완벽하게 세팅하고 또 사운드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기만을 원했지,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데쓰 캡을 앞으로 싫어하겠다, 이런 건 아니다. 그들의 스튜디오 앨범은 여전히 명쾌하다. 하지만 공연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었다. 그냥 스튜디오 앨범을 라이브로 들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Bon Iver w/ the Wheel at Fox Theatre, Boulder, Co

That was awsome, really awsome performance. The wheel was the opening band whom I expected very little, because most of opening bands I experienced were immature and thus boring for many times. But, this band, country-based 6-people gathered, was really exellent. They have two string sections with three backing vocals which made their music so affluent. This band is the best opening band in my performance history.

Bon Iver, known for the one-men band of Justin Vernon, is also known for the indie folk musician. So I did guess that this night would be so peaceful. My guess was right partially, and wrong partially either. He brought three more session members, one for guitar and percussion, one for base guitar and drums, and one for the keyboards and drums. Yeh, it was very interesting organization. And Justin, played hundreds of guitars and keyboards either. In my experience, I think that the most of ‘big name’ american bands are able to have greater performance rather than their studio recordings. Bon Iver is in the category, too. Their play was extremely exllent, and somewhat different (I mean, stronger and more rhythmical) from their studio version. They sometimes made an improvisation with the original songs, and made audiences to participate in their songs – yes, we had to sing altogether!

Since they have only one album and fifteen songs, there should be a little bit short concert. They could made only a encore-song! But it does not matter for us. It was really beautiful night. I can compare them with Fleet Foxes.

more photos are availible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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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혈

어제 갑자기 빈혈 증세 (평생 빈혈이라는 증상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이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로 어지러워 휘청거리다가 침대에 누워 한참을 자고 일어난 후,

X발, 이따위로 계속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게 필요한 건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필요에 의해서 여자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게 느껴졌고,
결국,
그냥 독거남으로 당분간, 아주 꽤 오랫동안 살 결심을 했다.

제발 내 주변에서 여자가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이게 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그냥 성별이 여자인 친구들만 잔뜩 있었으면 좋겠어.
여자생물이 나와 짝짓기하려는 모습은 당분간 정말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그러하고. 당분간 허벅지에 바늘 꽂으며 살아야지.

단순해지고 싶다, 제발 내 삶이 조금 더 단순해 졌으면 좋겠다.

stay

결국 이번 가을 어플라이하지 않기로 결정. 트랜스퍼는 석사 학위 받고 난 후로 미루기로 했다. 그러니까 2년까지 다니고 옮기겠다는 계획이 3년차까지 끝낸 후 생각해보자는 쪽으로 바뀌었음. 3년차까지 끝내면, 남는 건 박사 논문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를 옮겨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미친 짓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때가 되면 더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 같지만, 올 가을에 준비하는 건 현실적으로 많은 무리가 따르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조금 더 완벽하게 준비해서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왕 시간적으로 손해보는 거, 논문의 질로 보상받고 싶었고, 학교의 리서치 랭킹으로 보상받고 싶었다. 지금도 내 스펙에는 부족한 게 많은지라, 여기서 1년 더 경험쌓으면서 부족한 부분 메꾸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조급해 하지만 않는다면 – 늙어가는 것에 대한 초조함만 잘 견뎌낼 수 있다면 –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되지 않을까.. 스스로 위로해 본다.

한국에서 성적표도 잔뜩 뽑아 오고 한국 지도 교수님께 추천서까지 부탁드렸는데, 흐,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학위 겨우 받아서 한국 돌아가고 싶은 마음 없다.

아무튼 머리가 복잡하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정리를 해 나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