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

지난 봄 직장을 옮기면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고 월급을 잃었다. 전직장에서 인사상 원치 않는 곳으로 배치된 이후 매일 아침 출근길이 괴로웠다. 새로운 일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고 바뀐 업무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다.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어차피 해야 할, 다른 누군가가 능히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업무였다. 괴로운 출근길의 한복판에는 미움의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를 그 자리로 보낸 사람에 대한 미움, ‘나에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한 미움의 감정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했고 위태로워 보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사람을 미워한 적이 거의 없었다. 가장 최근 미워한 사람은 이명박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삶에서 적당히 멀리 떨어진 사람을 사회 구성원의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미워하는 것과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을 개인적인 감정에 의지하여 미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 미워함의 감정을 없애기 위해 이직을 선택했다. 적지 않은 금전적인 손해가 뒤따랐다. 그 손해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내가 지불한 비용이다. 한 사람을 인생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지불한 비용이 아니라 굳이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누군가를 미워하는 내 마음을 허락하지 않기 위한 비용이다. 다음에 전과 비슷한 일을 겪게 되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결해보려 한다. 비용을 지불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충분히 자본주의적인 합리적인 접근방법이지만, 다음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부터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후속조치다.

Bob Boilen: Your Song Changed My Life

bobboilen
중학교 시절 일주일에 5천원의 용돈을 받았다. 일주일 내내 딱히 돈을 쓸 일이 없던 나는 그 5천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토요일 오전수업이 끝나면 친구 진우와 함께 효자동에 있는 레코드샵에 가서 테이프 하나를 샀다. 그 테이프를 일주일 내내 들으며 쉬는 시간마다 진우와 음악 이야기를 했다. 가끔 돈이 보너스처럼 더 생길 때에는 테이프를 하나 더 사거나 [핫뮤직]이나 [서브]같은 음악 잡지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중학교 3년 생활이 끝날 때 쯤 내 방에는 약 300개의 테이프와 수십권의 음악잡지가 쌓여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테이프가 아닌 CD를 사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면서 MP3 음악을 다운받아 듣다가 유학시절부터 다시 CD를 사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요즘에는 CD보다 바이닐을 더 많이 산다. 물론 애플뮤직 등을 이용해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요즘 듣는 음악들도 물론 나를 매번 즐겁게 해주지만, 사춘기 시절 들었던 음악들이 이후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즐거움과 같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지금은 음악이 삶의 습관이자 생활의 일부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음악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고 중심이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일주일을 살았고, 테이프 속지에 적힌 음반 해설과 [핫뮤직]에 거의 매달 실렸던 “~ 명반 50선”의 리스트를 외우는 일이 기말고사 준비보다 더 중요했다. 당시 좋아했던 뮤지션들의 언행은 내 삶의 표지였고 당시 좋아했던 음악이 삶의 태도를 결정했다. 나같은 일개 음악팬도 그정도였는데 시대를 빛낸 뮤지션들의 어린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들의 삶을 바꾸어놓은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살짝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NPR에서 [All Songs Considered]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밥 보일렌(Bob Boilen)은 뮤지션이자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하지만 1년에 약 500개의 공연을 보는 엄청난 음악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인터뷰어이기도 한데, 그런 그가 당대의 뛰어난 여러 뮤지션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음악 커리어, 더 나아가 삶 자체를 바꾸어 놓은 음악을 정리해놓은 책이 [Your Song Changed My Life]다. 한국 음악팬들에게 해외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약간 먼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대나 한남동의 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말을 걸 수도 없다. 보고 싶을 때마다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남아있지 않은 않은 국내 음악매체에 자주 노출되지도 않기 때문에 해외 뮤지션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 책은 그 간극을 매워주는 소중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들이 어린 시절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 현재의 음악 커리어를 형성한 근간은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때의 쾌감이 생각보다 짜릿하다. 거의 대부분의 젊은 뮤지션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환경 요소도 분명해 보이지만(부모님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엄청난 음악 애호가이거나) 꽤 많은 뮤지션들의 경우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이유나 배경이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인트 빈센트의 경우 집 앞을 지나가던 배달 트럭이 우연히 떨어트린 박스에 담긴 음반들이 그녀가 접한 첫번째 음악이었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학교 기숙사 친구의 방에서 우연히 접한 1960년대 소울/R&B 아티스트 샘 쿡(Sam Cooke)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아 현재와 같은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밥 보일렌에 의하면 코트니 바넷의 초창기 음악은 매우 평범했고 밴드의 공연도 미숙하기 짝이 없었지만, 투어 도중 윌코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현재와 같은 바넷 특유의 기타 테크닉과 가사 창작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런 디엠시 등 올드스쿨 힙합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컨트리-블루스 싱어 제니 루이스의 고백도 재미있다. 현재 2,30대로 음악적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호지어(Hozier), 아스게이어(Ásgeir) 등 많은 뮤지션들의 사춘기 시절 영웅이자 워너비는 너바나와 펄잼이었다. 나도 너바나와 펄잼을 들으며 성장했기에 더 반갑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만약 나를 닮은 자녀가 생긴다면 나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일선물로 악기를 선물해줄 수도 있고, 저녁 시간 내내 음악을 틀어놓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흥미롭게 관찰해보고 싶기도 하다. 음악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나를 닮은 그 친구가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다면 상당히 짜릿한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내 아버지가 젊은 시절 모아두었던 산울림의 음반을 내가 다시 찾아내어 재생했을 때 아버지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카텔 뮐레르·조제 루이 보케: 몽파르나스의 키키

키키
마리옹 꼬띠야르가 주연한 [라 비앙 로즈]를 보고 에디뜨 삐아프의 생애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보다 더 심한 남녀차별이 존재하던 시기 가난과 불운을 온 몸으로 받아 내며 치열하게 살다 간 한 여인의 생은 그 자체로 이미 영웅의 서사가 아닌 불완전한 인간의 완벽한 서사였다. 그녀가 남긴 것은 비단 아름다운 음악만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역사적 증거로서 그녀의 생 전체가 읽힐 수 있다. 삐아프보다 조금 더 일찍 같은 빠리라는 공간에서 태어나 삐아프만큼이나 치열하고 아픈 사랑의 증거로 기록될 삶을 살다간 여성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러 남성 예술가의 뮤즈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립적인 여성 예술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돈 많은 남성을 유혹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창녀로 기억되는 알리스 프랭(Alice Prin), 혹은 “몽파르나스의 키키(Kiki de Montparnesse)”라고 불린 이 여성의 삶은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그 연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질 지경이다. [몽파르나스의 키키]는 아방가르드 사진작가 만 레이의 연인이자 후지타 츠구하루, 모이즈 키슬링 등 당대 유명 예술가의 뮤즈였던 그녀의 삶을 그래픽 노블로 옮긴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카텔 뮐레르와 글을 쓰는 조제 루이 보케는 [에디트 피아프], [올랭프 드 구즈] 등 역사에 남을만큼 뜨거운 삶을 산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2007년 발간된 [몽파르나스의 키키]는 아버지 없이 애정 없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알리스 프랭이 가난과 무관심을 뚫고 빠리의 몽파르나스를 거점으로 당시 예술계의 뮤즈로 떠올랐다가 마약과 건강악화로 일찍 세상을 등지는 순간까지 그녀의 주요 사건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성장한 키키는 빠리에서 생존을 위해 몸을 팔기도 하고 외설적인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화가들의 모델로 발탁되어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본인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한편 음반을 발매하는 등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삶도 영위한다. 하지만 한 남성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뜨거운 열정과 한평생 따라다닌 마약이라는 덫이 그녀의 발목을 서서히 잡아 끌어내리고, 결국 마약과 알콜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50세 초반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빠리 예술, 사교계의 스타였다고 한다. 만 레이와 후지타 츠구하루 외에도 모딜리아니, 헤밍웨이, 피카소 등이 그녀를 직간접적으로 스쳐 지나간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리저리 비틀리는 삶을 산 불완전한 인간이기도 했다. 동침하는 남성은 수시로 바뀌었으며 그 중에는 상습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영혼이라고 부를 것이고, 다른 이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 불행한 인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주체적인 삶을 뜨겁게 살아간 여성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조제 루이 보케는 다사다난한 그녀의 삶을 장소와 시간별로 묶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되 하나의 차원에서 해석되지 않도록 사려깊게 표현했다. 카텔 뮐레르는 키키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드러내듯 한껏 활기찬 이미지의 빠리를 특유의 그림체로 그려냈다. 키키를 둘러싼 역사속 주요 이벤트들을 만화적으로 잘 재현하기도 했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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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가 관객으로 하여금 전쟁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전쟁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는 혀니루님의 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영화는 매우 재미있고 또 유례없이 새롭다. 적군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 특이한 전쟁영화는 탈출과 생존이 유일한 목적인 군인들과 그들을 위해 애쓰는 “조국”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와 피로한 피부의 결을 그대로 촘촘히 짜여진 플롯 사이에 재현한다. 영화는 관객을 전쟁터의 한복판에 위치시키기 위해 등장인물의 처절한 사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이전의 전쟁영화들이 당연히 받아들였던 많은 가정들을 버리고 전쟁의 실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 영화의 90% 이상을 할애한다. 덕분에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실제로 떨어지는 포탄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웅크려야만 할 것 같은 느낌, 혹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이룩한 가장 큰 성취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력이 탁월한 감독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놀란은 관객과 영화가 만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효과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감독이다. 그는 새로운 차원의 서사를 창조하는 이야기꾼이라기 보다는 기존 영화세계에 존재해 왔던 가장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차용하여 새로운 차원의 영화적 체험을 이끌어내는 일종의 기술자에 가깝다. [메멘토]와 [인섬니아] 모두 이야기 자체가 매우 독특한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영화의 형식을 비틀어 관객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새롭게 느끼도록 유도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 된 이후에도 놀란의 서사 기술방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셉션], [인터스텔라]로 넘어오면서 조금씩 더 진부해졌을 뿐이다. [다크나이트]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그는 관객이 그의 영화를 볼 때 ‘새롭다’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다양한 트릭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왔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각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모두 이전 영화들이 꿈도 꾸지 못했을 ‘꿈 속의 꿈’과 블랙홀 등 현실 저편에 있는 공간을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성공적으로 재현해냈다. 놀란이 새로운 차원의 영화적 시각화를 이루기 위해 행해온 과정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심지어 장인정신의 향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많은 공대생-ish한 영화매니아들을 열광케 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덩케르크]는 이러한 놀란의 장점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놀란은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적 장면을 선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관객을 그 공간에 위치시키길 바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극단적으로 연출된 청각적 효과와 영화적 비약까지 감수해가며 관객의 체험지수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영화 내내 심장을 조여오는 한스 짐머의 배경음악, 귀를 찢는 듯한 폭격기 소리와 어지러울 정도로 흔들리는 극단적인 클로즈업 헨드헬드 카메라, 그리고 아주 깨끗한 화면으로 이 모든 것을 재현해 내는 고화질 필름과 아이맥스 카메라까지, 놀란의 세계에 초대된 관객은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의도적으로 즐거운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받은 셈이다.

하지만 영화가 이룩한 이러한 시각적 성취는 영화 막판에 이르러 놀란의 빈약한 서사구조 탓에 상당 부분 빛이 바랜다. 물론 대중영화로서의 흥행성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택했을 고육지책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쓸데없이 장황하게 이어지는 애국심 고취 장면을 비롯해 영화 막판에 위치한 이야기들은 너무나 진부하고, 더 나아가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촬영되었기에 더더욱 이 영화에 푹 빠져있던 관객을 사정없이 현실로 끄집어내어 버린다. 처음 맛보는 환상적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코스요리를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마무리한 기분이다.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오락영화의 최전선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이유, [인터스텔라]가 유례없는 시각적 체험을 선사했음에도 애끓는 가족애밖에 모르는 일차원적인 캐릭터 탓에 큰 감동을 선사하지 못한 이유, [인셉션]이 꿈 속의 꿈 속의 꿈을 반복하며 만들어낸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쾌감’ 이상의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 모두 공통적으로 놀란의 치명적인 약점에 기인하고 있다. 그는 조금 더 창조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 이야기 위에 놀란의 ‘입장’을 드러내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 놀란의 영화에는 놀란의 목소리를 찾을 수 없다. 영화는 영화적 즐거움을 주는 오락매체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철학을 담아내는 예술의 한 플랫폼이기도 하다. 놀란이 기술자 이상으로 나아가 작가로 인정받고 싶다면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놀란의 영화를 보면 먼저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삶에서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의 다음 영화가 나오면 또 보게 되겠지만, 다르덴 형제나 마이크 리처럼 영화를 본 관객의 삶 자체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진정한 체험’은 다음에도 없을 것 같다.

2017년 여름휴가 간단 정리

1. 우리의 여행은 대부분(프랑스 남부, 남해, 제주도, 그리고 짧은 창원행까지 ) 둘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본능적인 기대감, 혹은 신남(excitement)에 의존하여 행선지와 일정이 결정되어 왔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는 파노라마 페스티벌을 본다는 핑계로 뉴욕에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아내의 샌프란시스코 연수 일정이 갑자기 잡혀 버리는 바람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후 서부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베가스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계획하면서 그랜드 캐년 일대를 돌아보려고 생각했지만 더운 여름 날씨때문에 포기했다. 결국 요즘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뜨는” 도시인 포틀랜드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선선할 것으로 예상된 미 북서부 일대를 돌아보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정과정에서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 아래와 같이 진행됐다.

“뉴욕에서 페스티벌 보고 윌리엄스버그 근처 구경할까?” “너무 좋을 것 같아!!”

“그랜드 캐년 어때? 아름다운 자연..” “너무 좋을 것 같아!!”

“포틀랜드에서 힙스터들의 삶을 체험해볼까?” “너무 좋을 것 같아!!”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해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2. 베가스는 아내와 나 모두 두번째 방문이었다. 미국 각지에서 오는 친구들과 만나기 위한 장소로 선택했다. 거의 항상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행기표와 호텔, 그리고 밤 늦게까지 즐길 수 있는 안정적인 요소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관계를 유지하는 에너지가 워낙 부족한 탓에 인생 전체를 통틀어 친구를 많이 두지 않은 편인데, 6년간의 미국생활에서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1년에 한두번씩 미국에 갈 때마다 버선발로 마중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친구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 뿐이다. 22살에 우리를 처음 만난 K는 어느새 서른살이 되었고, 20대 중반에 이들을 처음 만난 나는 30대 중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우리는 가장 저렴한 위스키를 병째로 마시며 길거리 위에서 낄낄거렸다. 노는 방식은 늘 똑같다. 아내와 친구들을 서로 소개시켜주고 싶다는 이번 여행의 첫번째 목적도 달성되었다.

아내는 지난 첫번째 방문 때 경험하지 못한 쇼를 하나 보고싶어 했다. 우리가 선택한 쇼는 [Le Réve], 프랑스어로 꿈이라는 뜻인데 원형의 무대를 중심으로 물 속과 물 위, 그리고 공중에서 펼쳐지는 서커스였다. 서사구조는 단순했지만 베가스에서만 볼 수 있는 화려함의 극치를 맛볼 수 있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맞물려 들어갈 때 보여줄 수 있는 한 극단을 체험한 것 같다.

베가스는 매우 더웠다. 그리고 너무 미국적이었다.

3. 베가스에서 2박을 하고 포틀랜드로 날아가 3박 4일을 보냈다. 포틀랜드에서 우리는 최대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아침은 늦잠을 자느라 대부분 건너 뛰었고, 좋은 커피와 건강한 음식, 맛있는 맥주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포틀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캐넌 비치(Cannon Beach)였다. 지금까지 가 본 그 어떤 해변가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Coava Coffe의 맛도 잊을 수 없는데, 지금까지 한국에서 마셔본 그 어떤 좋은 커피보다 다양하고 화려한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에 와서 원두 한봉지 정도는 사와도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짦은 기간 포틀랜드에 머물며 받은 첫 인상은 주류 백인사회 안에서 다양성이 최대한 보장된 곳이라는 것이다. 이 곳에는 다인종이 만드는 다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흑인은 찾아보기조차 힘들었고 스패니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시애틀과 엘에이의 영향 탓인지 주류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듯 보이는 아시아인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 문화가 동등하게 대접받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오로지 주류 백인사회 안에서 조금 더 극단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어렵지 않게 정착할 수 있는 개방적인 사회적 공기만이 존재할 뿐이다. 물론, 진보적인 백인이 점령하고 지배하는 도시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아마 미국의 다른 대부분 도시들보다 훨씬 살기 좋을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외부인에게 친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외부인을 쉽게 이웃으로 받아들여줄지는 의문이다. 포틀랜드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훨씬 더 극단적인 백인-진보 세력의 집결지인 볼더에서 몇년 간 살면서 느꼈던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볼더와 포틀랜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적 공기 안에서 느껴지는지 여부라고 본다. 볼더는 상대적으로 훨씬 순박하다. 히피적인 여유로움이 도시를 지배한다. 이에 반해 포틀랜드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와 비슷한 공기를 가진 도시가 서울이다.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시장 버블과 젠트리피케이션이 포틀랜드에서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나눈 주요 대화주제 중 하나가 ‘미국에 살기’였다. 미국에서의 거주 경험이 있는 우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다. 물론, 이제 우리는 더이상 어리지 않기에 미국에서의 생활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존재함을 잘 인지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 인정할 정도로 등과 어깨에 짊어진 것이 많은 나이가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 모국을 떠나 미국에 거주하려 한다면 지금까지 누렸던 수많은 ‘디폴트’ 혜택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갖는 불리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에서 살고자 하는 확고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내는 이번 여행에서 그러한 부분을 정리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포틀랜드가 적지 않은 힌트를 준 것 같았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하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오리지널’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도시가 주는 매력은 분명해보였고 그녀는 이 도시가 보여주는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우리가 미국에서 살고자 한다면 아마도 이와 비슷한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쉽게도(?) 포틀랜드 시내에 위치한 포틀랜드 주립 대학은 비주류 경제학의 요람이다) 여유로운 문화를 원하는 나에게는 너무 빠르고 거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미국에서 이정도의 관용을 보여주는 도시도 흔치 않겠다 싶었다.

Heathman Hotel에 묵었는데 작은 방을 잡아서 그런지 지나치게 좁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4. 포틀랜드에서 차를 몰아 네시간 쯤 걸려 도착한 곳은 이번 여행의 최종 종착지인 시애틀이었다. 나는 몇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곳에 한번 와본 적이 있다. 당시 크리스마스 당일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 발을 동동 구르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두시간 쯤 걸려 교외에 있는 한인마트에 가서 끼니를 때웠던 경험이 있는 도시다. 첫 방문인 아내를 위해 수산시장(Pike Place Market) 옆에 호텔을 잡았고, 이틀의 시간만 주어졌기 때문에 수산시장과 스페이스 니들, 팝문화 박물관 등 주요 관광지 위주로 다녔다.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도착한 첫째 날 저녁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부랴부랴 뛰쳐나와 달려가서 본 말리 출신 뮤지션 Amadou & Mariam 의 공연이었다. 저녁식사를 먹으며 볼 수 있었던 일종의 디너쇼였는데, 서버가 우리의 주문을 잊어버려 식사가 한시간이나 늦게 나왔고 그렇게 나온 식사마저도 맛이 별로 없어서 공연 전체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뻔 했으나 이 할아버지 할머니 듀오의 공연이 너무 흥겹고 좋아서 아내와 함께 신나게 춤을 추며 놀 수 있었다. 나름 잔잔한 영혼의 흐름을 유지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아내의 ‘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인데, 이번 여행에서도 그녀에게 건강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많이 넘겨 받을 수 있었다.

팝문화 박물관(Museum of Pop Culture)에서는 데이빗 보위가 72~73년 지기 스타더스트로 분하던 당시 전담 사진기사였던 믹 롹(Mick Rock)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보위의 사진들을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5. 어른이 된 후에도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깨고 나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재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위기가 찾아오려 하던 즈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녀는 요즘 내 에너지의 원천이다. 전에 목도하는 못한 새로운 성질의 에너지를 매일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다. 그 과정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이번 여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떨어져 있던 한달동안 몸과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지쳐버렸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녀를 통해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것이 우리가 장기적으로 꿈꾸는 미국행이든, 단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또다른 즐거운 여행이든 상관없다.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게끔 하는 에너지가 제공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Rose garden

장미공원(Rose Garden)

Coava

코아바 커피(Coava Coffee Rosters)

cannon beach

캐넌 해변(Cannon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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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보위 특별전(David Bowie by Mick Rock Exhibition)

아내와 떨어져 보낸 한 달

이번 주 토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아내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캘리포니아에서 7월초부터 계속된 원치 않던 솔로 생활을 마무리하는 셈이다. 아내의 장기 출장이 결정된 후 많은 주변인들이 이를 “자유”에 비유하며 축하(?)를 건넸지만, 나는 이 한달이 몹시 무료하고 외로웠다. 고백하자면 아내가 출국한 그 날 딱 하루 약간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아마 넓은 침대 위를 혼자 뒹굴거릴 때 느껴진 상대적인 -그리고 곧 사라질- 광활함과 팬티만 입고 돌아다녀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저급한 자유로움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결코 즐겁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하나의 관문을 거치며 나의 삶은 참 많이 달라졌는데, 친구, 술, 그 밖의 외부활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완전히 사라진 요즘 아내가 없을 때 누릴 수 있는 이점은 사실상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혼 이후 나의 삶의 대부분은 나와 아내만을 위해 존재해왔다. 이 둘은 각자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했지만,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하나의 ‘팀’으로 존재할 때가 더 많았다. 때문에 아내가 없는 금호동 아파트에서 혼자 존재하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아내가 돌아왔을 때 그녀가 떠나기 전과 비슷한, 혹은 더 나은 환경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정도였다. 매주 화요일에 하던 분리수거를 여전히 혼자 하고 빨래도 밀리지 않고 꼬박 꼬박 해두었다. 전에는 아내와 나누어서 하던 일을 혼자 할 뿐 집에서의 루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말동무가 사라져서 훨씬 더 재미가 없었을 뿐이다. 대신 아내가 꼬박 꼬박 챙겨 사오던 빵을 사오지 않게 되어 아침을 거를 때가 많아졌고 저녁식사도 유학시절로 돌아가 간단한 원디쉬 스타일로 때우게 되었다.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침대에 서로 몸을 포개고 누워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자동차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는데도 삶의 질이 훨씬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내가 없는 동안 만났던 친구들은 아내가 있어도 충분히 만날 수 있던 친구들이었다. 아내는 내가 친구를 만나고 늦게 들어오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내가 친구가 너무 없어서 오히려 걱정을 하는 편이다. 지난 한달동안 친구를 만난 횟수는 약 다섯번, 모두 ‘더이상 만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이 작용해 만난 사람들이었다. 친구와 우정을 쌓는 행위에 대해 가치를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편이다. 어쩌다 친해지면 그 시간을 즐기면 되는 것이지, ‘만나기 위해 만나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다섯번의 만남조차 모두 자정 이전에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왔다. 주말을 세번 쯤 보내자 혼자 살던 시절의 공기가 떠올라 더 우울해졌다. 그 당시 느꼈던 자유로움보다 혼자 살 것을 각오하던 무렵 마주해야 했던 외로움이 더 크게 떠올랐다.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준비를 하면서 비로소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먼저 베가스에서 스캇과 크리스, 캐런을 만나 2박 3일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나 그 주변이 훨씬 좋지만(베가스에서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는 1인) 한푼이라도 더 싼 항공편이 있다고 하는 베가스에서 만나는 것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미국에 온다고 하니 동부에서, 남부에서 날라와주는 친구들이 고마울 뿐이다. 이후 우리는 포틀랜드로 날아가 자동차를 대여해서 포틀랜드 주변을 좀 구경할 계획이다. 그곳에서 3박 4일을 머문다. 여행계획을 들은 어머니가 “킨포크의 향기를 느끼고 와라”고 했는데 누나도 똑같은 말을 했다. 한국인에게 킨포크란 무엇인가. 내가 아내에게 제시한 여행 테마는 아웃도어 활동과 커피 투어다. 포틀랜드까지 갔으니 폭포도 보고 장미꽃도 보며 조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포틀랜드의 커피문화도 체험하고 싶어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가며 약 열 곳 정도의 커피숍을 구글맵에 찍어두었다. 하루에 세잔씩만 마시면 다 맛볼 수 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3일은 시애틀에서 보낼 계획인데, 두번의 밤은 각각 공연(Amadou & Miriam)과 야구경기(Angels at Mariners)로 채워질 예정이다. 시애틀은 언제 들려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커피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카페인과 같은 약간의 흥분감을 느낄 수 있다.

항공권과 호텔 바우처, 공연과 렌트카 영수증 등을 출력해 가지런히 챙겨 보니 이번 여행도 결국 내 뜻대로 준비된 것 같아 아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무엇을 해도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은 관계가 되었다. 물론 그 와중에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함께 있다가 가끔 혼자 있는 것과 늘 혼자 있다가 가끔 함께 하는 것에는 심리적으로 큰 간극이 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 결코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나 자신을 더 높고 넓은 사람으로 만드는 지름길임을 이번 결혼을 통해 배우고 있다. 이제 사흘만 더 보내면 아내를 볼 수 있다.

Arcade Fire: Everything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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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파이어의 신작 [Everything Now]에 대해 평이 엇갈린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꽤 좋은 음반”이라는 평부터 “그들 커리어에 흑역사로 기억될 음반”이라는 평까지 다양한데, 대체적으로 “커리어 사상 최고의 음반은 절대 아니다”라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것 같다. 나는 상당히 안좋게 들은 쪽이다. 그들 커리어에서 최악의 결과물임은 분명해 보이며, [Funeral]과 [Suburbs]에서 쌓아올린 위상을 스스로 걷어차버린다는 점에서 일종의 후퇴로 읽을만한 지점까지 발견된다.

물론 윌 버틀러와 그의 친구들이 가진 기본적인 음악적 역량은 여전히 뛰어나다. 다양한 장르를 아케이드 파이어만의 자장(磁場) 안으로 껴안으면서도 밴드의 고유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을 들으면 수많은 레퍼런스가 떠오르면서도 아무런 레퍼런스가 떠오르지 않기도 하는데, 이들이 픽시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적통임에도 불구하고 아레나급 밴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이 음반에서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다만, [Reflektor]에서부터 서서히 감지된 불안감이 이번 음반에서 드디어 터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앞서 발매된 [Funeral]부터 [Suburbs]까지 쌓아올린 명성으로 인해 그들은 그래미에서 호명될 정도로 인디록씬 뿐만 아니라 현대 영미 록씬 전체를 대변하는 존재로 각인되어 버렸는데, [Reflektor]에서는 이러한 그들의 위상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구멍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골적인 디스코 사운드의 차용, 의도적으로 한번 더 꼬아버린 듯한 메타포, 아케이드 파이어만의 광활한 공간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꽉 막힌 사운드스케이프 등 전작에서 처음 시도된 다양한 모습들이 [Everything Now]에서 조금 더 명확하게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한 사운드가 이어진다. 타이틀곡 “Everything Now”의 변주는 형식적인 부분에서만 이들의 전작들에서 발견되었던 대가적인 흔적을 찾을 수 있고, “Creature Comfort” 등 소수의 곡에서만 섬뜩하면서도 깊게 파고드는 밴드 특유의 날카로움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대가 아티스트에게 부여한 사회적 위상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수없이 존재해왔다. 스스로를 풍자화시키거나 완전히 다른 장르로 나아가는 것 역시 수차례 목도한 현상이었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시도는 혼란스럽다. 의도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들이 그렇게 좋지 않다. 목적과 형식에 사로잡혀 음악의 본질을 살짝 망각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걱정하게 된다. 윈 버틀러는 “우리 위니 하고 싶은 거 해”라는 익스큐즈를 받아도 좋을 만큼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전작과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앞으로 더 치고 나갈 수 있는,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은 가능성이 있었다. 왜 스스로를 이렇게 빨리 포기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더이상 [Funeral]과 같은 긴장감을 더이상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허망하게까지 느껴진다.

낮은 출산율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출산율 문제에 대해 이래저래 말들이 많은데, 내가 항상 주장하는 바는 젊은 부부들이 생각이 모자라서 애를 낳지 않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에서 애를 낳으라고 아무리 쪼아도 본인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애를 낳을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이다. 내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에 맞벌이는 당연히 해야 하고 아이를 낳으면 ‘이모님’이나 친정 어머니가 돌봐주셔야 하는데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아이를 어찌어찌 학교에 들여보낸다고 해도 초등학생이 미적분학을 공부해야 살아남는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깝다. 그 과정까지 또 어찌어찌 성공적으로 살아남고 아이를 좋은 대학에 들여보낸다고 해도 졸업 후에는 5천만명이 살지만 2%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나라에서 150만원을 받는 1년짜리 인턴으로 취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맞벌이 부부가 열심히 노력해서 집 한채 얻는 것은 그나마 가시권으로 들어올 수 있다. 모성애, 부성애를 억지로 억누르고 너희끼리 잘 사는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강요하는 사회가 정상적인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애를 낳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0년대 초반, 그러니까 거의 한세대 전부터 애를 적게 낳아 왔고 최근 그 경향이 더 두드러진 것도 아니다. IMF 위기 전까지 1.6명대였던 것이 위기 후 1.2~4명대로 떨어진 것이 전부다. 이게 엄청난 변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장기간 ‘유교 탈레반’에 의해 억압되면서 마치 우리나라에서 2~3명씩 순풍순풍 낳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사회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국가가 정책적으로 출산을 해도 괜찮다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게 전혀 되지 않았다. 여성의 사회활동은 가시화되는데 정부는 여전히 출산과 육아를 여성에게 일임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낮은 출산율이다. 이게 아이를 낳는 사람들의 탓인지 그들을 둘러싼 전근대적인 사회적 공기와 후퇴적인 정부 정책 탓인지 따져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최근 이 문제가 마치 심각한 사회문제인 것처럼 대두되는 것이 약간 불편할 정도다. 곧 은퇴시기로 접어드는 베이비붐 세대와 그 바로 밑 세대가 자신들의 노후를 떠받들어 줄 연금제도의 부실화가 걱정되어 출산율을 독려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랫 세대가 계속 돈을 벌어야 지급되는 것이 윗 세대의 연금이다. 2008년을 기점을 경제성장률이 7%대에서 2%대로 뚝 떨어지면서 연금 재원의 급속한 고갈은 예상되기 시작했다. 이게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려 ‘혹시 내가 죽기 전에 연금이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늙은이들의 온 몸을 휘감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더해,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역삼각형으로 변해가는 인구구조에서 대부분의 베이비붐 세대가 수도권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자산 가격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 ‘잠재적 아파트 구매자’를 만들어내라고 닥달하고 있는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 1도 안보태고 그저 시키는대로 묵묵히 노예처럼 일한 대가로 받아든 것이 수도권 아파트 한채가 전부다. 이걸로 어떻게든 죽기전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누군가는 내 아파트를 비싼 값을 치루고 사야 하는데 점점 잠재적 수요층이 줄어드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이들은 아파트를 팔아 창조적인 사업을 꾸릴만한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후배 사원 닥달하고 종업원 닥달하고 자식새끼 닥달해서 무언가를 짜내는 것이 이들이 가진 유일한 재능이다. 현재 연금도 그렇게 짜내려고 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결과다. 젊은 부부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사회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수준의 신생아를 만들어내어 왔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노인들이 생각보다 일찍 죽지 않는 고령화 현상이다. 생각보다 더 오래 살아남게 되니 골칫거리가 된 셈이다. 문제는 이들이 생산활동에 기여하는 바가 현격히 낮다는 점이다. 폐지를 줍는 일을 아직까지 노인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50세만 되어도 대기업에서 나가야 하는 환경 자체가 비정상이다. 아파트 경비를 남성노인이 독점하는 구조도 이상해보인다. 능력있는 30대 부장이 70대 대리에게 명령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더 낫지 않겠는가. 내 마음속의 꼰대 유교문화만 거세할 수 있다면 고령화 문제의 대부분이 풀릴 수 있다.

“생산인구가 급속히 줄고 있는 것이 문제다”라는 주장은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을 할 수 있는 인구의 비중이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경제 전체가 주저앉게 될(뿐 아니라 일 안하는 노년층을 먹여살릴 방법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가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출산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선택’의 문제이니 어떻게든 애를 낳으라고 닥달해야 하고, 죽지 않는 노인들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 그저 어쩔 수 없이 공짜 지하철이나 타고 다니며 소일이나 할 수 밖에 없다는 기본 가정 자체가 틀렸다. 먼저 노인들은 실제로 가난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연금 등 노후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충분한 국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극빈층 노인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죽지 않는 노인들도 일을 계속 할 수 있다. ‘일’이라는 것이 육체노동을 의미하는 시대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 ‘노인’의 정의부터 달라져야 한다.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고정관념도 바뀔 때가 왔다. 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노인들의 노동력을 활용해야 한다. 오히려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경제구조에서 노인들의 노동력은 보다 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고통분담’은 노인들도 함께 해야 한다. ‘은퇴’라는 개념은 2%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나라에서는 사라져야 한다. 고령화한 노년층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면 생산인구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낮은 출산율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낮은 출산율이 ‘문제’라는 생각을 기어코 바꾸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낮은 출산율은 문제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원인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낮은 출산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결과는 너무 많은 가정과 추측이 필요한 상상 속 세상일 뿐이지만, 낮은 출산율을 만든 원인들은 이 사회의 안좋은 모든 것을 농축해 놓은 액기스와도 같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관찰대상이다. 여성에 대한 수십, 수백년간의 비논리적인 탄압을 정당화시키고 나이 그 자체로 사회적 지위를 약탈하려고 하는 유교적 세계관에 의해 탄생한 숫자일 뿐이다. 모성애와 부성애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지만, 최소한 여성에게 조금 더 높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허락되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낮은 출산율을 해결하고 싶다면 어느 정당에서 주장했던 바와 같이 해외에서 노동력을 수입해오면 된다. 하지만 지금도 구로나 안산을 슬럼이라 칭하며 노골적인 인종차별 기질을 드러내는 한국인의 습성을 볼 때 이조차 요원한 일이다. 뿌리깊은 유교적 세계관에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적 믿음이 더해지니 답이 없다. 문화적으로 열려 있지도 않고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도 없다. 우리나라가 먹고 살기 어렵다면 해외로 나가면 되는데 그 잘난 유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엄청난 교육열은 토플 만점은 받을 수 있지만 해외에서 영어회화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만 잔뜩 만들어냈다. 이 뛰어난 젊은 친구들은 먹고 살기는 힘든데 기술로 돈 버는 것은 천하다고 생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일단 아무 대학이나 가서 등록금 꼴아박고 150만원 받으며 인턴으로 일한다. 아파트를 소유한 부모에 기생해서 30대 중반까지 비정규직으로 전전한다. 친기업 정서가 팽배한 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국격”이라는 단어 하나로 가볍게 정리된다.

결국 유교적 질서에 갇혀 버린 폐쇄적 사회가 그 비용을 지금 톡톡히 치루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사태를 이렇게 심각하게 만든 주범들은 여전히 아파트를 부여잡고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그 책임을 지금 막 사회로 나온 젊은 세대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능력에 걸맞는 직업을 갖지 못하고 그만한 수입도 보장받을 수 없는 이 세대는 아이조차 마음대로 낳을 수 없다. 이미 많이 늦어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정신머리부터 고쳐야 한다.

프레드 울만: 동급생

동급생
내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는 아이오와 작가협회에서 퓰리처상 수상자인 메릴린 로빈슨(Marilynne Robinson)을 사사했다.  포터가 작가로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후 “소설의 첫 문장에 가장 많은 공을 들여라. 그 문장이 작품을 대변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두고 집필활동을 한다고 밝힌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다(읽었는지 팟캐스트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거의 모든 픽션을 접할 때마다 작품의 첫 문장을 유심히 읽게 된다. 작품을 처음 접할 때의 첫 문장이 어떤 색을 띠는지,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첫 문장을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좋은 첫 문장을 가진 작품은 긴 시간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더라.

1971년 처음 출판된 이 짤막한 중편 소설(novella) [동급생]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 

이후 르누아르, 혹은 고갱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묘사되는 도시에서 그보다 더 아름답게 펼쳐지는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위의 첫 문장이 그저 성인이 된 한 남자의 기억 속에 이쁘장하게 자리잡은 기억의 한 조각 정도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오니즘의 광기어린 유대인 사냥과 그로 인해 갈갈이 찣겨진 소설 속 화자의 가족 이야기를 담담히 전해오는 작품의 마지막 즈음에 다다랐을 때 이미 독자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급기야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면 위의 첫 문장이 완전히 새롭게 읽히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작품의 마지막 문장과 첫 문장의 마술적인 호응에 의해 소설의 크기, 혹은 차원이 완전히 달라지게 됨을 느끼게 된다.

그저 호감어린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십대 시절의 풋풋한 감정, 수채화처럼 묘사된 두 소년이 살아간 도시, 마냥 아름다울 것만 같던 서사를 헝클어 버리는 암울한 시대적 환경, 그리고 그 시대를 버티어 낼 수 있게 만든 두 소년의 우정.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문장을 손으로 한땀 한땀 더듬어가며 다시 읽게 된다. 소년은 소년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화자가 기록하지 않은 그 빈틈들 사이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의 삶 속으로 들어와 영원히 떠나지 않음으로 인해 숭고한 인간성은 그렇게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일까. 책을 덮은 후 많은 것을 천천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동성애혐오의 경제적 비용

동성애혐오 문제는 전세계적으로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골치아픈 일이지만, 우리나라에 국한하여 동성애혐오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보는 일은 나름의 독특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 근본주의, 불교 근본주의에 더해 개신교 근본주의까지 더해져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상당한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는 실정이고 한발 더 나아가 동성애자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행위 등 실질적인 문제를 야기시키는 위험요인으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내 일이 아니면 절대 나서지 않는다’는 한국인 특유의 국민성과 정책 당국자의 개인적인 ‘입장'(개신교 신자라던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 동성애혐오자에 대한 집단적이고도 강력한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연구자들이 앞장서서 한국식 동성애혐오론이 갖는 논리적 허구성을 적극적으로 논파해나가는 것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주로 심리학이나 사회학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혐오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추산하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미 캐나다에서 2001년 발간된 정책보고서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The Cost of Homophobia: Literature Review of the Economic Impact of Homophobia on Canada], submitted by Christopher Banks, submitted to Gay and Lesbian Health Service, 2001.)

위의 보고서는 동성애혐오, 혹은 성적소수자 혐오로 인해 성적소수자들이 받는 피해를 경제학적으로 추산한 작업들을 모아놓은 서베이페이퍼다. 방법론은 간단하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인해 성적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과 동등한 의료혜택을 누리지 못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만약 이들이 동등한 의료혜택을 누렸다면 얻게 되었을 효과를 추정함으로써 역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환경경제학이나 보건경제학처럼 어떤 정책, 혹은 집단적 행위의 경제적 효과를 직접적인 통계자료로 추산하기 어려운 경우 주로 취하는 방법이다. 보고서는 성적소수자들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혐오로 인해 “일반적인” 이성애자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고  사회적인 장벽으로 인해 성적소수자에게 필요한 의료행위가 적시에 제공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사용한 지표는 자살률, 흡연률, 기대수명, 우울증, 실업률, 범죄율, 에이즈 발생률 등 8가지 항목이다. 보고서는 만약 호모포비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성적소수자들이 나타내는 위 8가지 지표의 수치와  “일반적” 이성애자들의 수치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에서 거의 동등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추정한 호모포비아의 연간 경제적 비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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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자살률의 경우, 2001년 캐나다 기준으로 호모포비아가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이 약 8억달러 정도로 추산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호모포비아가 없었다면 더 적은 성적소수자가 자살했을 것이고, 이들이 만약 살아서 경제활동을 정상적으로 영위했을 경우 발생하는 경제적 순효과가 연간 8억 달러에 이르는 것이다. 이 결과를 두고 “동성애혐오자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갉아먹고 있다!”라고 주장해도 사실 그리 크게 잘못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성적소수자의 ‘존재’ 자체만으로 사회에 발생시키는 경제적 비용은 정확히 추산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다. 성적소수자가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통계도 없고, 더 열등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도 없다. 오히려 동성애결혼 합법화 등이 발생시키는 경제적 순효과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성적소수자들을 ‘양성화’시킬 때 그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일부 종교인의 심리적 ‘불편함’ 정도일 것이다. 이건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무시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 성적소수자들의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이들에게 동등한 사회적, 의료적 혜택을 부여할 때 돌아오는 경제적 효과는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더 나아가, 성적소수자와 같은 극단적으로 소외받는 계층을 사회적 장치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소수자, 약자가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자에게 사회적 혜택을 적극적으로 베푸는 사회가 빈민층이나 장애인에게 인색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즉, 사회복지의 전체적인 ‘bar’ 자체가 한단계 높아지는 효과도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dbpia나 kiss, kipris 등 국내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 동성애 혐오를 경제적 효과와 연결짓는 논문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관심을 가지고 있을텐데 아직 발표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믿고 싶다.